30일 아침 달리기의 기록
매일 아침 일어나서 뛰어보았습니다.
30일 동안 매일 아침 일어나서 뛰는 실험이 끝났다. 시작할 땐 어느 세월에 끝나나 싶었는데 돌아보니 금방 지나간 듯 느껴진다. 하루도 안 빼먹고 완주한 기특한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오늘 오후에는 PT를 20회 등록하고 왔다. 앞으로도 운동 열심히 하면서 매일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달리는 습관을 이어가고 싶다.
아래는 매일 뛰고 난 후에 한 문장씩 적은 글을 모은 내용이다.
30일간 매일 아침 뛰어보기로 했다.
거의 평생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았다. 전 직장을 나오기 며칠 전, 익숙한 아침 숙취에 고통스러워 하다 문득 내 몸을 좀 소중히 가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9년 9월, 마지막 학기를 마치려 돌아간 학교에서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했다. 많은 운동 중 달리기를 선택한 이유는, ‘오늘은 뛸 수 없는’ 핑계를 댈 수 없다는 점이 매력적이라 느꼈기 때문이었다. 주변 코트, 수영장, 운동 기구 또는 같이 할 사람이 없어도 신발 끈 매고 나갈 의지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뛸 수 있단 점이 좋았다.
KAIST 캠퍼스 테두리를 따라 뛰면 4km가 좀 넘는데, 첫 날엔 절반을 살짝 지나 토 나올까봐 포기하고 시계를 보니 22분이 지나 있었다. 시작은 처참했지만, 이삼일에 한 번씩 꾸준히만 뛰었더니 학기 끝자락엔 4분대로 7km를 뛰는 날도 있을 정도로 성실하게 나아졌다. 노력과 성과의 엇박자가 당연한 세상에선 하면 는다는 사실만한 동기부여가 또 없다.
물론 뜨거운 열정도 추운 날씨엔 참 쉽게 식는다. 다시 시작한 출근 탓에 바쁘고, 날도 추워 나가기 싫단 핑계로 하루씩 빠지기 시작하니 금세 안 뛰는 일상이 당연해졌다. 그렇게 겨울이 다 갔다.
겨우내 빈둥거린 뒤 날이 풀리면서 슬슬 다시 시작해볼까 마음 먹고 뛰러 나온 날, 이럴수가! 원래 뛰던 속도보다 훨씬 천천히 뛰었는데도 원래 뛰던 거리의 절반쯤 뛰니 죽을 지경이었다. 많은 귀한 것이 그렇듯 체력도 쌓는 게 어렵지 무너지긴 너무 쉽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다행히도, 며칠 뛰어보니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맨 처음 상태로 초기화된 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기본적인 자세나 호흡법은 기억에 남아있었고, 근육도 다 사라지진 않았는지 기록이 향상되는 속도도 처음보다 빨랐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훨씬 큰 차이를 만드는 자산은 바로, 처음의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사라진 자리를 메꾼 ‘해 봤고, 또 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그 뒤로도 (주로 짧은) 뛰는 시기와 (주로 긴) 쉬는 시기의 왕복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꾸준히 뛰는 듯 싶다가도 날이 추워서, 약속이 많아서, 일이 바빠서… 다양한 이유로 두세 번만 연달아 빠지면 이내 뛰지 않는 게 당연한 상태로 돌아갔다. 쉬면서 녹슨 몸을 체감할 때마다 비트코인에 관한 농담처럼 “그 때부터 꾸준히 달렸어야 했는데… 라고 생각했을 때부터 꾸준히 달렸어야 했는데… 라고 생각했을 때부터라도 꾸준히 달렸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의 고리는 길어져 갔다.
문득 ‘스스로 나를 달리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누적 350km라는 적지 않은 거리를 뛴 후였지만 달리기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라 느껴지진 않았고, 선뜻 그렇다 대답하기 어려웠다. 핑계 댈 수 없어 좋다고 시작한 달리기인데 너무 많은 핑계를 대고 있었다.
그런 생각 속에서 이번에야말로 달리는 사람이 되어보자는 마음으로 – 반쯤 충동적으로 – 30일 달리기를 시작했다. 거리나 속력의 제약은 포기하고픈 날을 만들 것 같아 두지 않고, 매일 아침 그 날 몸 상태에 맞게 뛰는 것만을 목표로 잡았다. 거리를 염두에 두지 않은 달리기처럼, 미리 정한 얼개 없이 달리기에 관한 문장을 매일 하나씩 모아 글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도 더해졌다.
30일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아침 달리기를 통해 나는 달리는 사람이 되었을까? 춥든 비가 오든 눈 뜨면 – 빈약한 의지를 그러모을 필요 없이 – 습관처럼 물 마시고 뛰러 나가는 게 자연스러워진 걸 보면 몇 발짝은 다가선 것 같다. 두 보름을 거름 삼아 이번에야말로 달리는 사람을 향한 느리지만 꾸준한 발걸음을 계속 이어나가야겠다.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