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하루, 달콤한 집

결혼에 부쳐.

결혼 사진

저는 가끔, 아니 가끔보단 조금 더 자주, 내가 한심합니다.

세탁 태그를 제대로 확인 안 해 아끼는 옷의 색이 날아가고 목이 늘어납니다. 가벼운 말로 주변 사람을 상처입히곤, 어설픈 사과로 용서받은 뒤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숙취로 웅웅대는 머리를 부여잡고 간신히 일어나, 어제는 왜 그렇게 들떠서 안 해도 되는 말을 했나 이불을 걷어찹니다. 한 번 해보겠다고 호기롭게 직접 맡은 일을 감당 못 하고 휩쓸리며 허우적댑니다.

성실하게 찾아오는 내가 한심한 날을 누구나 그런다 웃어 넘기기도,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날씨로 씻어내리기도 하지만…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자책과 우울이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 날들도 있습니다.

시간을 돌려서 다르게 행동하고 싶고, 세상에서 감춰지고 싶고, 잘 해낼 자신이 없을 바엔 망신당하기 전에 차라리 일찌감치 포기하고 싶은 날. 나만큼 별로인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을 떨쳐낼 수 없는 날이면 유독 하루가 길지만, 그런 긴 하루도 결국엔 끝이 납니다.

하루 끝엔 집이 기다립니다.

혼자 살 때는 집에 돌아오면 어찌할 바를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못다 끝낸 업무가 남은 회사 메신저를 유령처럼 떠돌거나, 유튜브나 넷플릭스에 머리를 쳐박곤 생각의 스위치를 끄려 노력했습니다. 또 한 번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못남에서 눈을 돌리려 애쓰다 잠에 들었습니다.

그런 날이 반복되던 중 2020년 여름, 같이 사는 생명이 둘 생겼습니다. 고양이 두 마리입니다. 봄에 태어난 형제 고양이라 봄나물 이름을 따 봄동과 달래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식구는 루틴을 달고 옵니다. 어떤 하루를 보냈든, 집에 돌아오면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사료를 채워주고 물 그릇을 갈아줍니다.

그로부터 조금 후에는 사람도 한 명 같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은 하진입니다. 고양이를 데려온다면 내가 잘 기를 수 있을까 고민할 때 넌 잘 할 거라고 응원해주고, 봄동과 달래라는 이름도 직접 지어줬습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나 8년이 넘게 동안 함께 했고, 아마도 저의 못난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많이 봐 온 사람입니다.

식구가 늘면서 루틴도 늘었습니다. 이제 하루가 끝나고 돌아온 집에서 우리는:

고양이와 놀아주고 이를 닦아주며, 오늘의 기쁘고 슬픈 일을 나누면서, 서로의 빨래를 개고 서로 요리해주며, 틀어놓은 음악을 따라 부르고 이상한 춤을 추며, 드라마와 영화를 함께 보다가, 결국엔 한 침대에 누워 팔베개를 하고 두서 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잠에 들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그런 지가 벌써 일 년 반이네요.

그런 루틴, 하진과 고양이, 그리고 어쩌면 나까지를 돌보는 일을 통해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도, 제가 소위 말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현관문을 넘을 때 달고 들어왔던 무겁기 짝이 없던 좌절이 어느덧 훅 털면 날아갈 먼지처럼 가벼워져 있습니다. ‘못 하겠다’, ‘할 수 있을까’ 가 ‘해볼 만 하다’, ‘해 봐야지’로 바뀐달까요. 신기한 일이지요.

그런 신기함을 새삼 깨달을 때면 함께 살아서, 집에 혼자가 아니어서 참 좋다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살면서 맞이할 매일에 점수를 매겨본다면, 오늘은 100점에 가까울 겁니다. 바쁜 주말이자 휴가철인 오늘, 더운 날씨에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감사히도 자리를 빛내 주셨고요. 아끼는 사람과 새로운 관계로 출발하는 날이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오늘만 못하겠지요. 50점, 60점이면 다행이고 0점짜리 하루도 많을 겁니다. 아무리 애쓴들 내가 싫어지는 상황은 예방할 수 없을테고, 서로가 서로의 하루를 더 힘들게 만드는 원인이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 하루가, 또 하진의 하루가 몇 점 짜리였든. 그 하루의 끝에 우리는 결국 서로가 있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 집에서 아끼는 마음을 나누며 소소한 일상을 함께하며 또 다음 날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아무리 씁쓸한 하루였더라도, 서로가 서로의 집이 되어 한 꼬집 달콤함을 섞어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또 앞으로도 오래 동안 그러겠다는 다짐을 오늘 결혼이라는 예식을 통해 많은 분들 앞에 선언할 수 있어서 기쁘고 설레며 감사합니다.

하객 여러분, 결혼식을 도와준 주헌, 강용희 목사님, 가빈, 찬우. 그리고 장인 장모님,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 잘 살아보겠습니다.

하진. 고맙고 잘 부탁해. 부부가 되어서도 지지고 볶으면서 즐겁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