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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트』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고통스러운데, 그냥 앞으로 가야 돼. 그 상황이 너무 화가 나는데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어.”
나에게 이 정도의 감정적 동요를 가져다 준 영상 매체가 있었던가?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황홀한, 어떤 종교의 경전 내지는 기원 신화, 서사시와 같은 영화였다. 쿵쾅대는 베이스, 사막과 협곡, 망가진 스피커, 어둠을 가르는 전조등, 반복되는 아홉 박자, 모래바람, 철로. 이 영화의 사운드와 이미지가 이야기와 구분할 수 없는 형태로 뭉쳐져 마음 속에 온전히 한 자리를 차지한 듯한 기분이다. 사운드트랙만 다시 들어도 주먹을 꽉 쥐고 앉아 있던 영화관의 그 좌석으로 소환당한다. 극장에서 나와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하진이 던진 말: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고통스러운데, 그냥 앞으로 가야 돼. 그 상황이 너무 화가 나는데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어.”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보다 날카로운 그 다리, 그 무자비하고 차별 않는 삶이란 다리 위에서 우리는 그저 앞으로 걸어 나아가는 수 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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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류: 머물러 있음
쓰러지다 시옷자로 포개어 겹쳐 선 나뭇가지처럼.
나와 새솔 사이엔 세 번의 유산이 있었다고 한다.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막연한 안타까움 정도를 느꼈다. 세 번이라니, 진짜 힘들었겠다– 그러나 이해라 말하긴 어려운. 짧지 않은 시도 끝에 25년 말 찾아온 기쁜 소식이었던, 하진의 임신이 26년 새해 계류 유산 판단을 받으며 때이른 시점에 끝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이야기이다.
회사에서의 여느 날처럼, 한 회의를 다녀와 다음 회의를 준비하는 새 짧은 즉흥 회의를 가지려던 참이었다.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찜찜한 뭔가를 검사하러 병원에 다녀온 하진에게 메시지가 왔다. 의사 선생님 가라사대, 아기가 될 조직이 임신 주차 대비해서 너무 작다고 분만 병원에서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하시네.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당면한 즉흥 회의를 끝내고 전화를 걸었다.
– ‘응, 놀랐겠네. 많이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건가?’ – ‘이러다 괜찮아지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정도로 얘기하던데.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아.’ – ‘그래? 그렇구나. 음⋯ 집 가고 있는 거지? 일단 내가 지금 퇴근할게. 만나서 밥이라도 먹고 들어가자.’
오리역에서 만나 어죽을 먹었다. 같이 먹자고 하진이 몇 차례 주장했지만 내 취향과 정반대에 놓인 메뉴인 터라 여지껏 한 번을 못 먹은, 이제는 거의 둘 사이엔 농담 같아진 메뉴. 어죽철렵국을 시킨 하진과 달리, 나는 그나마 감당 가능한 추어탕을 한 그릇씩 시켰다. 함께 불안해하고 위로하며 그릇을 비우며 깨달았다. 역시나 어죽도 추어탕도 내 입맛엔 맞지 않았다. 그래도 앞으로 더 자주 함께 와야지 생각했다.
그저 기다리는 것, 그게 제일 힘든 부분이지. (마이크 플래너건 – 『척의 일생』)
원래의 다음 병원 방문일자까진 꼬박 한 주가 남아 있었다. 그 사이엔 새해와 생일 맞이를 겸해 잡아둔 여행 일정이 있었다. 숙소 취소가 가능한 시점을 막 지났지만, 이 불안함을 안고 맘편히 여행을 다녀올 자신이 없었다. 병원 방문을 여행 일자로 앞당긴 뒤, 취소 문의를 위해 전화를 걸었다. 기대하고 있었던 여행인데 어제 막 아이가 유산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이 상황에선 아무래도 여행을 가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숙소비 환불이라는 지극히 실리적인 이유로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누구보다 먼저 수화기 너머로 소식을 알리며, 당황스럽게 눈물이 났다. 지난 주, 고작 지난 주에는 여행을 잘 다녀온 후에 곧 아이 심장 소리를 들을 거라 천연덕스럽게 믿고 있었는데. 이게 진짜인가? 전화를 끊으며 바랐다. 병원에서 이 모든 게 며칠 성장이 늦은 해프닝일 뿐이었다는 말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날린 숙박비를 아까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6주 아이 안 보임’, ‘난황 후에 아기’, ‘6주차 무증상’… 며칠 동안의 우리 둘의 검색 기록을 겹쳐보면 두 가지가 눈에 띌 것이다. 평소보다 검색량이 엄청 늘었다는 것, 그리고 검색어 대부분이 겹친다는 점. 한 번은 임출산 앱 커뮤니티에서 우리 상황과 너무 똑같은 글을 찾았다. “이거 봐, 여기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 잠깐, ‘아기 도롱뇽083’ 이거 하진이 쓴 글인가?” 하진이 쓴 글이 맞았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든 웃음을 찾을 줄 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아무래도 유산으로 가는 것 같아요. 수술 날짜를 잡고 다음을 준비합시다.” 열에 하나는 좋은 결과, 아홉은 나쁜 결과일 상황이라면 기대값은 0.1이다. 나쁜 결과가 확정되는 순간 그 값은 0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확정된 0 앞에서 적어도 희망 고문은 끝났음에 –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 차라리 안도하는 마음은 설명이 가능할까? 수학적으로는 불가능하며, 문학적으로는 가능할 것이다. 우리 둘은 설명 없이도 같은 마음이었으니, 굳이 따질 의미도 없지만.
죽을 필요가 있어서 죽는 사람도 있느냐? 삶을 인정한다는 것은 삶의 기쁨이니 행복이니 하는 것들만 취사선택하여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다. 급작스러운 사고와 황당한 죽음도 모두 인정한다는 것이다. 윷가락 네 개는 한꺼번에 던져져야 한다. 그 중에서 배를 보이는 것, 혹은 등을 보이는 것만을 인정하겠다는 것은 윷놀이를 할 줄 모르는 자의 말이다. (이영도 – 『눈물을 마시는 새』)
맘 졸인 며칠 새 가장 강한 감정 중 하나는 부모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심장 소리도 못 들어봤는데도 이렇게 휘둘린다니. 이 존재가 실제로 내 눈 앞에 나타나, 울고 웃으며, 세상에 상처 입고 세상을 상처 입히게 되면⋯ 그 태풍 앞에 ‘나’라는 나뭇잎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게다가 내 못남을 본따 자랄지 모른다는 공포라니!
나는 좀 더 아무렇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초기 유산 확률은 10%-35% 정도라고 한다. 잘 모를 때의 막연한 상상에 비해 당황스러울 정도로 높으며, 비통하게 신을 찾거나 ‘어찌 나에게 이런 일이!’ 울부짖기엔 민망한 수치다. 아이를 가지려 노력하면서도 느꼈지만, 사람이 사고처럼 쉽게 생기는 건 아니었다.
나는 좀 더 슬퍼야 것 같다. 아이와 함께할 삶을 상상하면 모든 사랑하는 이에게 받은 선물을 훨씬 키워 받아낼 생각에 설렜다. 다시 말해, 너로 인해 내가 아는 나보다 조금은 더 나은 내가 될 희망을 그렸다. 너를 위해 내가 싫어하는 나는 덜어내고, 자랑스러운 나는 더한 내가 될 수 있을 듯 했다. 아이 될 너에겐 다소 당황스런 기대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말해 볼까: 너와 함께 하는 밤과 아침, 주말이 훨씬 힘들고 정신없겠지만 동시에 하루 끝에 자려 누워, 혹은 시간이 지나 사진을 빌려 돌아보는 그 순간들은 조금은 덜 허무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거창한 듯해 꺼렸던 삶의 의미라는 표현이 다시 보니 썩 틀린 것만은 아니다.
확정 진단 후 하진은 곧바로 수술 준비에 필요한 여러 검사를 받으러 갔다. 소식을 알리려 전화를 걸며 생각했다. ‘엄마 생일 선물이랍시고 지지난 주에 알렸는데, 괜한 짓을 했구나’.
그래, 고생 많았다. 하진이 몸 조리를 잘 해야하니 너가 잘 도와야 된다. 너도 마음이 힘들겠지만 아내만큼은 또 아닐 거니까. 애를 낳는 건 아니어도 수술하고 나면 그만큼 힘들테니 꼭 미역국 끓여주고. 주말에 오려던 건 오지 마라. 지금 네 생일이 중요하니, 하진이 몸 챙기는 게 중요하지. 집에서 푹 쉬어. (장말순 여사)
걱정이 완연한 동시에 같은 일을 겪어 본 이가 건넬 수 있는 단호한 위로에 눈물이 났다. 평생 알아온 나의 부모와 조금은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비슷한 키워드를 검색하고 또 검색하던 때 내 마음에 박힌 건 수많은 네이버 블로그들. 우리처럼 맘졸이고 애태우던 많은 이들이 우리처럼 0.1에서 몇 편의 글을 거쳐 0으로 향했다. 결말 뒤 몇 편이 이어지다 한동안은 새 글이 멈췄다. 애써 끌어모은 씩씩함이 삭풍 앞 잔불처럼 꺼진 듯 했다.
그러나 몇 달 혹은 몇 년 후 글은 다시 올라왔다. 같은 일의 반복을 걱정하면서도 다시 시도하는 이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만삭 사진, 또 그 다음엔 아이 사진. 아이들이 예뻤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아이의 탄생과 성장을 읽으며 나는 그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부러워하며 축복했다. 동시에 그들에게 위로받고 또 위로받았다.
우린 가끔 빠져 깊은 어둠에 / 그걸 하루라고 부른다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되지 (재달 – 「엄지」)
오만군데 올나간 털 목도리처럼 어찌 매듭 지을지 모르겠는 글과 마음 앞에 내가 아는 것을 읊어본다.
두 줄을 보고 몸 둘 바 모르던 들뜸. 침대에 누워 – 초기 유산도 많으니 아직은 이르다면서도 – 말도 안 되는 태명 후보를 번갈아 던지며 킬킬댄 밤. 보이는 아이 옷마다 머리 속으로 입혀보던 백화점 6층. 생각만큼 참담하진 않아 다행이라는 말 뒤 문득 둑을 넘듯 터져나온 울음. 나는 둘이 겪은 이 모두가 분명히 진심이었으며 그 기억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머무를 것을 안다.
머무름 끝엔 나아감이다. 삶은 비극도 희극도 아닌 동시에 그 모두이며 나는 그 전부를 받아들인다. 쌓였던 희망의 크기만큼 우렁차게 무너진 마음도 하루라고 부르면 하루일 뿐이다. 쓰러지다 시옷자로 포개어 겹쳐 선 나뭇가지처럼, 우리는 무너지는 와중 만나 서로의 기둥이 된다. 자신의 무게를 기대는 동시에 자신의 무게로 서로 받치며, 감사하며,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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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야 할 필요
너는 좀 비워야 할 필요가 있어.
긴 연휴가 끝나간다. 좀 더 쉬고 싶다, 벌써 끝났다니! 회사로 돌아가기 싫어– 말을 내뱉다 새삼 체감한다. 나는 요새 문득 공허하다.
연휴 동안 뭐 했지? 하진과 나의 원가족과 각각 여행 다녀오고 며칠 푹 쉬었다. 즐거웠지만 삶이 이런 나날로만 채워져도 좋을 만큼은 아니었다. 그럼 아쉬움의 출처는 ‘연휴 동안 맛본 회사 밖 무언가를 더 원해’ 보단 ‘돌아가야 할 원래의 삶이 아주 기대되진 않아’ 라는 건데.
오롯이 전념하고픈 뭔가를 찾았지만 다른 일에 묶인 이의 아쉬움은 합당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일을 찾은 사람이랄까. 반면 그게 뭔지는 몰라도 지금의 전업이 내 인생의 일은 아닐 것 같다는 감각만은 명확하다면 어떨까. 살아가는 대신 살아내고 있는 게 아닌가.
멋진 예술가를 알게 되면 출생년도를 찾아보는 습관이 있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초조함이 뒤섞인 작은 희망을 느낀다. 나랑 비슷하거나 어리면 ‘벌써부터 이런 걸 만들다니 얼마나 뿌듯할까. 근데 같은 시간을 갖고 난 뭘 했지’ 얻어맞고 우울해진다. (한편 IT 업계 인물을 보면서 이런 적은 거의 없는데, 이는 나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지…)
지난 며칠, 몇 주에 기반해 외삽한 내 삶의 경로가 썩 기대되지 않을 때. 매일 내일이 빨리 오길 기대하며 잠들고, 오늘을 얼른 시작하려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일만 하면서 살기에도 짧은 삶일텐데. 모두에게까진 아니어도 적어도 자신에겐 의미있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데. 이 노력과 시간이 과연 무엇을 남길지 의문이 들 때.
아– 인류 역사 상 수없이 반복됐을 이 진부한 고민이라니.
이런 하소연을 들은 하진은 말해줬다: 너는 좀 비워야 할 필요가 있어. 집에서든 밖에서든 함께 있다가 고개를 돌려보면 너는 항상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아.
- 희: 비운다는 게 뭐지? 하진도 항상 뭔가 하는데… 책이나 성경을 읽는다던지. 일기를 쓴다던지. 뜨개질이라던지.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안 하고 비어있는 시간을 많이들 갖나?
- 하: 그거랑은 좀 다른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 (…)
- 하: 나는 희종이 그냥 좋아하는 게 엄청 많아서 그 안에 푹 빠져 헤엄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런 고민을 하는 줄은 몰랐어.
- 희: 내가 영화든 책이든 자꾸 찾는 게, 단순히 좋아서도 맞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아. 몰입하는 동안은 작품 밖의 삶에 대해 잊을 수 있잖아? 나는 무엇을 원하지, 어떻게 살아야하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에 눈감을 도피 수단이 돼 준달까…
- 하: 아 그래! 내가 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 게 그거야. 뜨개질이나 집안일은, 몸은 계속 움직이지만 오히려 머리는 비워지는 명상 같은 면이 있잖아. 근데 희종이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는 시간은, 그런 것 같지 않거든.
아하. 옳은 말이라는 직감이 들면서 이 대화를 기록으로 남기기로 마음 먹었고, 적다보니 개인 웹사이트 대문에 적은 글이 떠올랐다.
“아렌,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 섣부르게 택하지 말도록 해라. 어렸을 때 나는 존재하는 삶과 행위하는 삶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단다. 그러곤 송어가 파리를 물듯 덥석 행위의 삶을 택했지. 그러나 사람이 한 일 하나하나, 그 한 동작 한 동작이 그 사람을 그 행위에 묶고 그로 인해 빚어진 결과에 묶어 버린단다. 그리하여 계속 또 행동하도록 만드는 거다. 그러면 지금처럼 행동과 행동 사이의 빈틈에 다다르기란 정말로 어려워지지. 행동을 멈추고 그저 존재할 시간, 자신이 대체 누굴까를 궁금해할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거다.” (…) 송어가 파리를 물듯 행위하다 보면 끝나있는 하루가 쌓여갑니다. 그 사이 사이 가만히 존재하고 느끼는, 자신이 대체 누굴까를 궁금해할 시간을 잃지 않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조금은 더 그럴 수 있는 것 같아 글을 씁니다.
수없이 읽고 심지어 몇 번을 따라 쓴 글귀도 자꾸 잊는 게 사람인가 보다. 글로 남기겠다 생각한 걸 보면 그 와중에 어떤 마음은 시간의 시험을 거쳐내고 우뚝 남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요새 문득 공허하다. 채울 방도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행동과 행동 사이의 빈틈에서 성급히 다음 행위를 택하는 대신 그저 존재하며 공허를 직면하다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이르바나」에서 화지가 말했듯 “날 때부터 우리 맘의 한 켠에 빈 구멍 이유라도 알고 갈” 방법이, 틈 사이 보일지 모르겠다. 채우려 애쓰는 대신 오히려 비우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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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에선 이런 걸 안 가르칠까
어릴 때부터 다 같이 배우면 참 좋을텐데.
언젠가 자식이 생겼을 때, 내 마음대로 크길 바란다면 망상이겠지. 그렇다고 마냥 방치할 수도 없으니 현실적인 욕심을 갖자. 한 손에 꼽을 정도의 바람을 정해 그만큼만 잘 달성해보는 걸로. 그런데 그 귀한 자리에 뭘 둬야 할지?
멋진 (그리고/또는) 무서운 남에게 판단을 위탁하지 말고, 자기 머리로 깊게 생각하고 온전히 책임지며 나아가야 해. 운동의 재미와 가치를 이십대 중반이 넘어서야 배운 나보다는 일찍부터 몸을 가꾸길 바라. 춤, 악기, 노래, 글, 요리 그 외 무엇이든 – 언제든 꺼내들 창작과 표현의 도구를 하나쯤 마련해둔다면 든든할 거야… 어렵게 배운 교훈을 통해 모아온 짤막한 목록에 최근 추가된 항목: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그림이든, 높은 해상도로 읽을 줄 알길. 사람도 그렇지만 세상 많은 콘텐츠가 빙하 같더라. 언뜻 흘겨보면 딱 그만큼만 보이는데, 사실 물 아래 뭐가 많더라고. 표면 아래 감춰진 깊이가, 쓰여진 문장 아래 서브텍스트가, 작품 뒤에 예술가와 그의 의도가 있다는 걸 알고 바라보면 있는 줄도 몰랐던 뒷장이 궁금해질 거야. 궁금해할 줄만 알면 들춰 볼 수 있어.
앨범의 흐름을 따라가며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전환에 전율하고, 같은 곡을 수십 수백번 듣고 비로소 숨어 있는 악기를 하나씩 발견한다던가.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내달리는 대신, 책장을 덮고 눈을 감고 단어 하나마다 곱씹으며 장면을 머리 속으로 그린다던가. 한 마디 대사 없이도 이미지, 사물, 음악과 컷의 전환으로 건네지는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도록 주파수를 맞춘다던가.
나는 읽는 데 그 많은 시간을 쓰고도 이걸 엄청 늦게 배웠어. 음악 감상을 취미 삼은지 십 년도 넘어서야 멜로디랑 가사 밖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스물 중반이 넘어서야 영화도 소설도 몇 문장으로 요약될 줄거리를 넘어선 것들을 가졌음을 알았지. 알고 나니 세상이 훨씬 크고 깊어지는 걸 느끼며, 왜 이리 늦었을까 아깝고 분하더라. 부디 볼 줄 아는 눈과 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해.
아니 근데 생각하다보니까 이런 걸 꼭 집에서 가르쳐야하나? 누구나 알면 훨씬 더 삶이 풍부해질텐데? 개인의 삶이 다채로워지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에도 중요한 영향을 줄 것 같은데? 애초에 왜 학교에선 이런 걸 안 가르칠까…’
샛길로 뻗어나가는 의식의 흐름을 쫓던 중 불현듯 깨달았다.
이거 이미 학교에서 완전 가르치고 있잖아..? 나도 분명 배웠는데?
충격과 함께 식은 땀이 살짝. ‘이 글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려는 주제는 이것이다’, ‘여기 나오는 감자와 저기 나오는 촛불은 이런 의미를 갖는 상징들이다’, ‘이 글은 형식이 어쩌구, 저 글은 표현이 저쩌구’… 초등학교 때부터 가장 먼저 배운 과목 몇이 이 얘기 하고 있었네? 꼬박꼬박 시험도 쳤었네?
심지어 우리 엄마는 어린 나와 친구들을 모아 직접 글쓰기를 가르쳤고, 부친은 나 어릴 적부터 어디서 구해온 프로젝터, 스피커로 집에서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틀어줬는데. 아티스트들의 인터뷰에 흔히 등장하는 예술하는 부모만큼은 아니어도, 이 정도면 우리 양친이 준 인풋도 적지 않은데, 그 결과가 (고작) 나였다니… 한 번 더 깨달음:
가르쳐서 그나마 이만큼인 건가? 생각보다 어렵구나?
이미 학교에서 잘 가르치고 있다는 짧은 안도감에 곧바로 뒤따르는, 공교육은 물론 집에서까지 이어진 가르침에도 나는 서른이 다 되어 깨달았다는 절망감. 그 절망감에 굴복할 수 없어 머리를 굴리다보니, 가르치고 배워온 방식이 문제였나 싶네.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주제로 시험 쳐 점수 매기고, 자기 머리로 부딪히는 대신 안전한 남의 생각을 외우게 하니까. 그런 식으로 되겠냐고.
그렇게 생각하니 희망도 보이는 듯. 사실 나도 누가 가르쳐줘서 이런 재미를 알게 된 게 아니지. 오히려 이걸 무슨 커리큘럼을 짜서 가르친다는 발상이 우습기도 해. 내 역할은 그런 세계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까지고, 그런 세계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내가 내 세계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니려나.
언젠가 자식이 생겼을 때, 함께 열심히 즐기고 서로 좋아하는 걸 소개하며 자극을 주고 받는 친구가 되어야겠다. 답을 떠드는 대신 궁금해하는 법을 알려줘야겠다. 그리고 궁금해진 것들에 대해 남의 정답 따위 신경쓰지 말고 마음껏 틀리면서 세상과 자신을 (또다시) 알아가는 과정을 옆에서 때론 조용히, 때론 시끄럽게 함께 해야겠다. 아…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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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 투 어스
풍선에 묶인 실을 꼭 움켜쥔 손처럼.
퇴근하면 구멍 뚫린 삽과 봉투를 들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운다. 며칠에 한 번씩은 ‘매일 해야 하는데⋯’ 후회하며 고양이들과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이를 닦인다. 말 잘 듣는 우리 고양이들은 칫솔을 들고 다가가면 짧게 도망치는 시늉 후 현실을 부정하듯 캣휠을 십수바퀴 돌리고는, 이내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애처롭게 순응한다. 둘 다 시간이 나는 날 밤엔 하진과 시리즈물을 한 편씩 본다. 혼자서는 볼 엄두가 잘 안 나는 시리즈물이지만 침대에 앉아 – 보통 시청 중간 쯤 벌떡 일어나 꺼내온 – 야식을 먹으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보면 금세 잘 시간이다.
하루 걸러 하루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팟캐스트를 들으며 탄천을 따라 삼십분 정도 달린다. 회사에 앉고나면 금방 땀이 식으며 등 뒤가 서늘하다. 자전거를 안 타는 이틀은 PT샵에서 트레이너님과 운동한다. 혼자서도 주에 하루 이틀 따로 헬스장에서 운동한다. 가끔 탄천에서 달린다. 평일 중 하루 이틀 저녁, 또 토요일 점심과 일요일 저녁은 하진과 먹는다. 집에서 두세번 해 먹으면 외식 한 번 하는 정도의 나름의 균형이 자리잡았다. 일요일 식사를 마치면 식기세척기를 돌려놓고 재활용 쓰레기와 폐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다.
열흘에 한 번 꼴로 탄천 돌다리를 건너 십분 남짓 거리 오리역 CGV를 찾는다. 오리역 CGV에는 아트하우스관이 있어 전국에도 상영관이 몇 안 되는 궁금한 영화도 자주 걸어준다. 언젠가 이 동네를 떠나면 가장 그리울 점 중 하나다. 한 주씩 번갈아가며 고등학교 친구들과 산에 오르고, 안양에 있는 본가에 방문해 원가족과 식사한다. 머리를 자르고 한 달이 다가오면 조금 자라버린 옆머리, 뒷머리가 지저분하게 느껴지는 떄가 오고, 그럼 곧 다시 이발소를 찾는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고양이 화장실 통갈이 때가 돌아온다. 남은 모래를 싹 버리고 전체 통을 솔과 세제로 박박 청소한 뒤 걸레로 물기를 닦고 새 모래를 채운다.
살다보면 익숙하고 별 생각 없던 문장이나 표현이 갑자기 다른 의미로 훅 파고든다. 작년엔 “down to earth”가 그랬다. 본래의 의미도 근 몇 년간의 고민에 대해 내린 해답과 결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 표현이 파고든 이유는 내겐 논리적이라기보단 감각적이다. 조금 이상한 생각 같지만, 둥실 떠올라 자꾸만 어딘지 모를 곳으로 흘러갈 듯한 나를 끌어내려주는 무게가, 그 무게에서 오는 안정감이 느껴진다. 생각이, 욕심이, 질문이, 자존심이, 불안이 내 세상을 흔들 때 나를 굳건히 땅에 발 딛게 해주는 움직임이, 날씨가, 고됨이, 반복이, 일상이⋯
요즘의 나에겐 풍선에 묶인 실을 꼭 움켜쥔 손처럼 고맙고 귀하다. 귀가길에 산책하는 사람과 강아지를 바라보며 나이 들어가면서도 이런 시간들이, 또 그 시간에 감사할 줄 아는 겸허함이 나와 함께하길 바랐다. ‘다운 투 어스’한 사람으로 남고픈 마음을 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