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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xRESIST』
꼭 한 번 시간을 내서 플레이해보길 강하게 권장(부탁)한다.

『1000xRESIST』는 일국양제와 2047년, 거대한 붉은 억압자, 우산 혁명과 홍콩 민주화 운동, 천 번의 저항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세대에서 세대로 유전되는 트라우마, 부모와 딸과 딸의 딸과 딸의 딸의 딸, 자매–복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시에 원죄, 이념과 종교, 성전과 경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아시아 디아스포라, COVID-19와 그를 둘러싼 인종적 시선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되풀이되는 역사와 기억, 저지른 실수와 벌어진 상처, 질투와 이해, 응징 또는 용서, 어디에 선을 그어 무엇을 버리며 무엇을 안고 나아갈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열 시간 남짓한 플레이타임 안에서 얕거나 산만해지지 않고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다룬다는 불가능해보이는 과제를 달성해냈단 게 개발진의 역량의 방증이다.
제작사 「sunset visitor 斜陽過客」는 4명의 풀타임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밴쿠버의 인디 게임 스튜디오다. 이들은 시각 예술, 춤과 연극, 작곡 및 무대 조명, 뉴미디어 아트 등 게임 개발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각자의 커리어를 쌓아가며 만난 사이다. 그러던 중 COVID-19로 인해 주된 창작 및 생계 수단인 공연 기회가 사라졌다. 이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선택한 수단이 게임이었다. 『1000xRESIST』는 그들의 첫 게임이다.
이러한 팀의 역사는 결과물에 진하게 녹아들어있다. 이 게임은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법을 알고 있다. 게임 속엔 “빨강이 파랑 되기를”, “여섯이 하나로”과 같은, 말버릇처럼 되뇌여지며 상황에 따라 여러 의미로 해석되는 경구들이 등장한다. 재밌는 점은 게임 자체의 소재와 이야기 역시 그러한 수많은 해석의 방향을 내포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서브텍스트를 동작하게 하는 동력은 다음과 같다: 함축적인 대사, 챕터 별로 파격적으로 전환되는 (여러 의미의) 시점, 시공간을 깨트린 뒤 뒤섞어 내미는 비선형적 스토리텔링, 주술적으로 반복되는 앰비언트 전자 음악 등. 게임 속 마법적 순간이 게임과 무관한 개발진의 기존 배경에 기대고 있음이 명백하게 느껴질 때마다 하릴없이 감탄했다. 우리가 전혀 동떨어져있다 생각한 것들이 사실 맞닿아 있음을 발견하는 일은 얼마나 잦은지!
게임 속엔 아시아계 이민자로서의 개인사, 모국에 대한 억압과 저항의 역사, 게임을 만들게 된 계기인 COVID-19, 게임이라는 매체와 스토리텔링 등의 다양한 소재에 대한 개발진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가 가득하다. 그러나 이 모두는 인류 멸망 후 마지막 남은 복제인간들의 이야기 속에서 결국 누구나 일부분 깊게 공감 가능한, 보편성을 획득한 무언가로 재탄생한다. 모두가 서로를 지지하는 동시에 받쳐내며 무너지지 않는 구조물을 엮어낸 솜씨가 경이롭다. 브라보!
물론 장점만 있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이 게임에는 실질적인 게임 메카닉이 전무하다. 실패 상태가 (한 부분을 제외하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게이머의 행동은 대사를 읽고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이동하며 스토리를 감상하는 게 전부다. 사건이 제시되는 순서 자체는 조각났고 비선형적이지만, 게임의 진행은 반대로 곧은 직선의 컨베이어 벨트 위를 달려간다. 그 외에도 대사나 길 찾기 등 소소한 편의성 문제들도 존재한다.
따라서 게임을 끝낸 후, 감탄하면서도 ‘과연 게임이어야 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처음엔 아닌 것 같았으나, 곱씹어보며 다른 매체, 예컨대 공연이나 책, 영화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게 되었다. 일례로 이야기의 핵심 소재인 ‘교감 의식’부터가 게임을 매체로서 구별짓는 가장 큰 특징인 상호작용성과 정면으로 맞닿아있다. 이 이야기는 이 방식으로, 내가 직접 체험했을 때 비로소 온전히 전달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같은 스케일을 다른 매체로 구현하려면 맞닥뜨릴 예산 등 현실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다.)
이 게임의 ‘게임성’ 부족은 역설적으로 평소에 게임을 즐기지 않는 이들에겐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원인이기도 하다. 뛰어난 컨트롤이나 전략적인 사고가 전혀 필요 없으므로 마우스나 키보드만 쓸 줄 알면 누구나 플레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리뷰가 흥미롭게 느껴진다면, 서두에 언급한 소재들 혹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제 자체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 시간을 내서 플레이해보길 강하게 권장(부탁)한다. 나 역시 몇 번 더 플레이할 생각이다. 이 글에서 다 못 풀어낸 감상을 친구들과 열심히 떠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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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반느』
지금껏 너무 좋게 보아서 글로 남기지 않을 수 없는 컨텐츠에 대해서만 썼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험도 기록하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 여운이 남거나 또 보게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왜인고 생각해보니 이 영화를 끝까지 본 후에도 딱히 요한, 미정, 경록이라는 세 인물을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기분이 들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영화가 던져주는 정보들이 없지는 않다. 허나 이는 영화 내의 등장인물 아무개 역시 그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파악할 수 있었을, 인간의 지층 중 상대적으로 표면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그게 아닌 심층에 어떤 무늬가 기록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 기분이다.
그 힌트일 수 있는 각 인물별 전사, 설정, 사건들이 제시되지만, 마치 소설의 ‘인물 소개’ 섹션에 소개된 짤막한 문장들처럼 그냥 툭 떨어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스가 잘 묻지 않고 면과 따로 노는 파스타처럼.
지금껏 너무 좋게 보아서 글로 남기지 않을 수 없는 컨텐츠에 대해서만 썼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험도 기록하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나의 불호가 정확히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그 불호가 작품에게 과연 정당한지 검증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추후 생각이 바뀐다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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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준비, 돌아가며
바다를 건너서, 하늘을 날아서⋯
식기세척기 마른 그릇을 꺼내 서랍장에 쌓아넣는다. 싱크대를 솔질한다. 냉동실 얼음틀을 꺼내 물을 붓고 얼음을 얼린다. 재활용 쓰레기를 비운다. 반도 안 찼지만 음식물 쓰레기도 버린다. 더운 날에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참기 어려운 냄새가 나니까.
‘타월’ 모드로 세탁 후 건조시킨 수건을 차곡차곡 개켜 욕실 서랍장에 넣는다. 세면대 거울 앞 흐트러진 로션 통과 머리핀, 오일이 널브러지고 자꾸 떨어지는 게 거슬려 주방에서 쓰던 바구니를 하나 비운 뒤 화장실로 가져와 정리해 담는다. 다 쓴 치약을 버리고 새 치약으로 바꿔두려 창고를 뒤지다 못 찾고 포기한다.
고양이 화장실에서 삽으로 배변을 퍼내 봉투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린다. 혹시 그 새 또 초파리가 생기거나 알을 까진 않았는지 체크한다. 책상 아래 하나, 옷방 거울 옆 하나 고양이 정수기 케이블을 빼내 물을 새로 한 번 갈아준다. 부엌 서랍장 아래칸 사료 포대를 꺼낸 뒤, 고양이 사료통으로 쓰는 밀폐용기를 채워넣는다.
새로 산 매트리스가 왔다. 이불 커버와 베개 커버를 꺼내 ’침구’ 모드로 세탁기와 건조기를 연달아 돌린 뒤, 베개와 이불에 씌우고 시트를 매트리스 위에 덮는다. 이틀간 충분히 환기 시킨 뒤 방수 커버를 씌운다. 침대를 샀던 집 근처 매장에 방문해 눈독 들였던 새 베개를 주문한다. 침실 바닥, 하는 김에 거실도 진공 청소기를 한 번 돌린다.
건조기에 있는 그녀의 빨래를 꺼내 책상 위에 종류별로 개어둔다. 빨래를 올리다 보니 책상에 똑같이 생겨서 맨날 헷갈리는 USB-C 케이블 – 하나는 충전기, 하나는 모니터 – 이 눈에 밟힌다. 충전기 쪽 케이블에 종이 테이프를 감아 표시해둔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나트랑으로 놀러 왔다. 한 때 무척 친했던 사이가 많이들 그러하듯 특별한 이유 없이 각자의 삶이 바빠지며 멀어졌지만, 24년 초 정기적으로 등산을 같이 다니면서부터 다시 자주 보고 있다. 모임에서 세부, 제주도, 속초 등 몇 차례 여행을 다녔는데 이번 여행이 개중 가장 긴 일정이다.
긴 여행은 곧 배우자를 혼자 두고 집을 비우는 날이 길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같이 살기 시작한 이래 하진은 학회 때문에 일주일 남짓 해외에 나갔던 적이 있지만, 내가 이 정도로 오래 비운 적은 처음이다. 임신한 상태라 더더욱 그렇지만, 여행에 대한 기대가 커질수록 혼자 두고 떠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부채감 역시 늘었다.
그런 마음을 보상하려는 양, 이삼일 전부터 떠날 준비를 했다. 집에 혼자 있을 하진의 하루를 상상하며, 뭔가 필요하거나 미세한 턱에 걸릴 상황을 하나씩 그려보며 그마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덜 외롭게 만들 방법을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할 일은 많고 시간도 잘 갔다.
준비를 하다문득 생각했다. 고작 오 일 집을 비우는데도 이렇게 챙겨야 할 게 계속 떠오르는구나. 내가 만약 먼저 죽는다면 그 때는 어떨까. 며칠은 커녕 남는 이들의 여생을 생각할텐데, 아무리 해도 그 준비가 끝나지 않겠구나. 바구니로 바닷물을 퍼내야 하는 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생각을 하니 서글프다. 그따위 준비는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상대에게 시키고 싶지도 않다. 무엇이 더 낫고 무엇이 더 나쁜지 선택이 불가능한, 오답 뿐인 질문처럼 느껴진다. 머리 속에서 생각 자체를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와 조금도 상관 없게도 우리 중 누군가에게 그 순간이 찾아올 것을 확실하게 알기에 더 서글프다.
그러나 바꿀 수 없다면 미리 걱정은 무의미. 떠나야 할 날이 조금이라도 덜 아쉽고 덜 후회하기 위해선 살아있는 매 하루를 충실하게, 마지막인 듯 살아가는 것 말곤 방법이 없으리라. 늘 떠날 준비를 하는 마음으로, 늘 너에게 돌아가며 살아야지, 소리내어본다. 이상하지만 묘하게 맞는 기분이 든다.
더운 나라의 리조트는 휴양지로 더할 나위 없다. 오전과 낮에 열심히 먹고, 약간의 러닝, 헬스와 상당한 수영을 한 뒤 나른한 상태로 방에 들어와 씻고 침대에 누워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 또 언제 올지 모를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겁지만, 마음 한 구석은 이미 슬그머니 한 뼘씩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바다를 건너서, 하늘을 날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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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구매기 3: 스팀덱, 유니클로 치노 팬츠와 호갱노노
집은 안정감. 집은 갓 빨아서 갠 태양 냄새 나는 수건. 집은 고양이와 아이의 잠자리. 집은 딱 좋을 만큼만 펑퍼짐한 튼튼한 바지.
집 구매를 결심할 때의 마음은 이러했다:
일이년마다 짐 싸서 이사 다니기 지겹다. 고양이 기른다고 눈치 그만 보고 싶다. 대단한 투자 수익은 바라지도 않고 ‘우리 집’이라 부를 공간을 꾸리고 싶다.
우리는 리모델링 사업이 진행 중인 집을 샀다. 빠르면 연말부터 이주 나가 몇 년 떠돌아야 한다. 다음 셋집 구할 땐 고양이 때문에 또 전전긍긍하겠지. 한편 일단 버티면 투자 수익은 기대해볼만 한가 싶은데.
한 마디로 원래 생각과 정반대의 선택을 한 셈이다. 대체 어쩌다?
올해 초, 8월 전세 만기에 맞춰 집을 구하려던 우리는 집값이 오르는 속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부동산 앱을 보니 분당엔 이미 우리 예산으로 갈 동네가 없었다. 도시를 옮겨야 함을 받아들이고 단지를 몇 추려 부동산을 찾았다.
사장님은 믿음직스럽던 첫인상만큼이나 추진력이 상당했다. 다음 날부터 후보를 보내시더니 사흘째 아침, 야탑에 지금 예산으로 들어갈 집이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
‘다만’, 단서가 덧붙여졌다. 리모델링 단지라 공사하는 삼사년은 집을 비워야한다고. 국민 평형이 되는 집은 분담금까지 하면 예산 초과지만, 이 매물은 작은 평수로 가는 덕에 예산 내인데 이런 집이 자주 나오는 게 아니라고.
이건 계획과 다른데? 애초에 이사를 그만 다니려 집을 사려던 건데. 하지만⋯
살던 집 앞단지 리모델링이 끝나가던 때였다. 누가 저 돈 주고 여길 사, 기겁했던 분양가에 팔리는 집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었다. ‘세상에 부자가 참 많구나’라던가, ‘분당 신축이 귀하긴 한가보네’ 따위의.
그럼 리모델링 후엔 여기도 그만큼 비싸지나? 아니지, 그새 물가도 오를테니 더하겠네. 사오년 더 고생해서 애가 학교 다닐 때쯤 더 나은 동네로 옮길 수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하지 않을까? 월급으로 집값 못 따라잡는 건 이번에 확실히 느꼈잖아. 어영부영 망설이다 이번에도 못 사면 다음부턴 선택권조차 없을지 몰라!
퇴근 후 방문한 단지는 번화가와 떨어져 조용하고 좋아 보였다. 전 주인이 이십몇년 산 집 상태는 여러모로 곤란했지만, 몇 달 살고 허물어진다면 큰 문제는 아니고⋯ 이게 마지막 기회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우리를 사로잡았고 이 집은 하늘에서 내려온 마지막 동앗줄인 듯 했다.
사장님의 부추김 살짝을 곁들인 고민과 정당화 끝에 다음 날 홀린듯 가계약금을 걸었다. 조마조마한 마음 탓에 흥정은 생각도 못 하고 호가대로 사겠다 하니 사장님이 이천 오백 만원을 깎아오셨다. 호구 될 뻔 했네, 아니 지금도 호구인가, 중얼대면서도 신났다.
한 달 후 본 계약을 위해 부동산 가는 길, 문득 얼마 전 산 스팀덱과 유니클로 치노 팬츠가 떠올랐다.
스팀덱은 출시 때부터 사고 싶었다. 플레이스테이션에 안 나오는 인디 게임이 좀 많은가. 그럼에도 게임기가 정말 하나 더 필요한가, 과연 얼마나 쓸려나 따위 고민으로 용돈에서 조금씩 모으다 돈이 필요하면 빼 쓰길 이 년. 결국 결심하고 중고로구했는데, 막상 사고 나니 왜 이리 오래 걸렸나 싶을만큼 좋았다.
치노 팬츠는, 오육만원 했나? 이전 바지가 찢어진 뒤 ‘하나 있긴 해야지’ 싶어 몇 달 간 대여섯 브랜드를 전전하면서 입어보고 빈 손으로 가게를 나서길 반복했다. 뭔가가 안 맞는 듯 했다. 그러다 유니클로에서 흔하지만 정확히 맘에 드는 바지를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둘 다 구매까지 오래 걸렸지만 이유가 돈은 아니었다. 살다보니 정말 내게 필요한, 딱 맞는 물건이 아니라면 안 갖는 게 오히려 행복에 가까울 수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랄까. 그 원단의 촉감 또 그 컨트롤러의 그립감처럼, 나 자신과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어울리는 것을 주변에 둘 때만 오는 즐거움이 있는 법이다.
한편 지금 사려는 이 집이라는⋯ 물건. 고민의 역사가 있다지만 그 둘과 비교할 수 없을만치 비싸고 오래 쓸텐데. 한 번 보곤 다음 날 계약이라니. 정말 이래도 되나? 헛웃음이 나왔다. 나쁜 기분은 아니지만 이 돈을 써서 뭔가 산다면 더 흡족할 줄 알았는데. 애초에 우리가 이 집을 왜 샀더라?
내가 느낀 건 만족감이라기보단⋯ 숙제를 마친 홀가분함, 파도가 몰아칠 때 표류하진 않겠단 안도감. 뭐 그런 것들? 오묘한 마음으로 새 등본을 확인하고, 사인하고, 계약금을 송금했다. 무튼 드디어 집을 구했다! 집 때문에 맘 졸이는 나날도 끝이다⋯ 물론 삶이 보통 그렇듯 생각한 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주택 구매 후보다는 구매 전에 부동산 정보를 열심히 찾아볼테다. 아직 결정 전이라면 그 내용에 따라 다른 선택이 가능하지만, 일단 일이 벌어진 후엔 무언가 더 알게 된들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몇 없을 테니.
계약 전 하진과 나눈 대화도 ‘구매 후’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다짐과 같았다. ‘만약 이 투자로 1,2억 손해를 본다면 어떨 것 같아?’ 속은 좀 쓰려도 괜찮을거야, 우린 생각했다. 어차피 살 집은 필요하고, 집 없는 불안함에선 벗어나지 않겠는가. 리모델링만 잘 되면 다음 집을 구할 땐 선택지가 조금이라도 많을테고.
집을 사고 나니 내가 합리적인 사람이 아님을 여실히 느꼈다.
계약 직후부터 그 전보다 수십배는 자주 호갱노노와 네이버 부동산을 들락거렸다. ‘부동산 스터디’ 카페도 가입하고, 블라인드 부동산 게시판까지 수시로 들어가 동네, 아파트 이름을 검색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매물이 또 올라왔네? 새 실거래가는 얼마로 찍혔지? 그새 올라온 댓글을 볼까⋯
내가 산 단지에 대해서만 그러지도 않았다. 아는 누가 최근에 샀다던 옆 도시 단지. 이전 집 앞 리모델링 단지. 분당에서도 ‘진짜 분당’은 여기라는 ‘서수정’ 단지⋯ 뭐를 알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 틈 날 때마다 온갖 단지의 소식, 호가와 실거래가를 확인했다.
게시판 글은 자리를 뜰 타이밍을 놓친 술자리 속 취한 상태로 억지로 건네받는 소맥잔 같았다. ‘상급지‘와 ‘하급지’를 나누고 임대아파트와 그 주민을 혐오시설로 묘사하는 시선을, 우리 단지와 옆 단지를 비교하며 매기는 점수를, 한 두 문장만에 상대를 무식하고 열등감 가득하다 낙인찍는 모습을 보면 속이 울렁거렸다.
‘이런 사람들 뿐이라니 정말 싫다!’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가만, 대체 누굴 향한 볼멘소리인가? 누구도 나를 이 술자리에 억지로 불러앉혀두지 않았다.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또다시 게시판을 여는 건 온전히 나 자신의 선택이었다. 어라, 나 또한 ‘이런 사람들‘인가.
소위 ‘부동산 문제’를 둘러싼 담론을 보며 늘 냉소를 지었다. 모두가 집값은 잡혀야 한다면서 자기 집만은 오르길 바란다면, 이 모순된 욕망에서 비롯한 문제를 대체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어? 라는. 허나 그 냉소의 대상에서 나는 과연 예외였을까⋯
‘뭐를 알고 싶은지도 모르는’이라 적었지만, 솔직해져보자. 수없는 클릭과 스크롤링을 통해 내가 탐지하고 싶던 건 사실 이런 신호들 아닌가:
내 구매가보다 훌쩍 높게 찍힌 실거래가. 사고 싶었던 단지 근처 개발 소식이 고꾸라졌다는, 그 포도가 알고보니 참으로 시더라는 소식. 우리 아파트 – ‘우리 아파트’! – 에 안 좋은 댓글을 다는 A는 시간 많고 할 짓 없는 흔한 악플러인 반면, 이 쪽을 좋게 이야기하는 B와 C는 점잖고 뭘 좀 아는 사람이라는 증거.
그 모든 걸 종합해 만들어낸, 결국 너는 좋은 선택, 현명한 투자를 했다는 안심.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에서 얻을 수 있는 안심이라는 게대체 내게 어떤 가치를 지닌단 말인가? 이 게임기를 내가 일주일에 몇 번이나 가지고 놀지, 내가 이 바지를 입고 앉고 걸을 때 얼마나 편할지. 마치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얼굴도 본 적 없는 남이 내려줄 수 있는 양 구는 게 내 모습이었다.
2026년 한국의 집 구매기에 돈 얘기를 빼놓긴 불가능해 보였다. 어찌저찌 그런다 한들 본질적으로 중요한 뭔가가 빠진 기분일 듯 했다. 그런 부채감에서 출발해, 어디서 시작할지 모르겠는 막연함을 다독이며, 집과 돈을 둘러싼 마음에 대해 적고 나면 무언가가 손에 잡히길 기대했다.
글을 마친 지금, 나는 어떠한 해소의 감정보다는 맘놓고 돈을 밝히지도, 반대로 아예 돈에 초연하지도 못하는 스스로의 어정쩡함만을 마주한 기분이다. 조개도 낙지도 없이 텅 빈 그물망을 들고 온몸에 진흙만 잔뜩 묻힌 내가 거울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정말 모르겠어 / 또 모든 게 결국 돈 얘기가 돼 (조월, 「당신의 사랑을 빌미로 (feat. 해파)」)
집은 안정감. 집은 갓 빨아서 갠 태양 냄새 나는 수건. 집은 고양이와 아이의 잠자리. 집은 딱 좋을 만큼만 펑퍼짐한 튼튼한 바지. 아니 집은 호재와 악재. 집은 공동현관 문을 여는 신분증. 집은 홍수 속 뗏목. 집은 누구나 이름을 아는 브랜드의 화려한 외투.
나도 정말 모르겠다. 살아갈수록 돈 얘기가 아닌, 아니어야 할 듯한 모든 게 결국 당연스레 돈 얘기가 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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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
온전히 추천하기엔 아쉬움이 있지만, 분명 훌륭한 부분이 존재하며 개인적으로는 자주 도움을 받을 듯하다.
아주 예전부터 이름만 들었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온전히 추천하기엔 아쉬움이 있지만, 분명 훌륭한 부분이 존재하며 개인적으로는 자주 도움을 받을 듯하다.
책의 핵심 프레임워크는 충분히 유용하다. 누구나 한 번쯤 읽고 적용해보면 좋겠다– 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여러 실패를 겪으며 생각하고 말하는 방법을 조금씩 정립해 왔다. 이 책에 정립된 방법은 그와 비슷한 방향이지만 훨씬 더 명확하게, 총체적이며, 실행 가능한 형태이다.
비폭력 대화는 크게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일어난 일을 그저 그대로 바라보는 ‘관찰’, 관찰을 통해 내가 느낀 감정을 이야기하는 ‘느낌’, 느낌의 원인이 되는 나의 ‘욕구’, 마지막으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구체적인 ‘부탁’.
저자는 관찰, 느낌, 욕구, 부탁이라는 각 단계를 꽤 구체적으로 정의한다. 예를 들어, 느낌과 생각은, 부탁과 강요는 각기 이런 지점에서 다르다. 올바른 부탁은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형태로 제시되어야 한다. 등등. 읽다보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개념 소개 장의 마무리에는 ‘이 문장은 우리가 정의하는 “느낌”에 해당하는가?’와 같이 각 장의 주제에 대한 연습 문제도 실려있다. 앞서 읽으며 피상적으로 만들어진, 저자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구분을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좋은 장치였다.
내가 어떻게 말할지를 다룬 뒤 책은 같은 원리를 상대가 말하는 상황에 적용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이 전환이 특히 좋았다. 상대가 무엇을 관찰하고, 어떻게 느꼈고, 그 느낌의 기저에 깔린 욕구가 무엇인지 공감하는 일. 머리로는 알아도 막상 반사적으로 튀어나가는 안 좋은 대화 습관을 점검하기 좋은 도구였다.
이러한 수단이 상대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었다면 아무리 유용하더라도 훌륭하다 부르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내용이 실제로 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 느꼈다. 아끼는 사람들과 책을 함께 읽고 노력하며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덜 좌절하는 모습을 그리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 점이 내겐 특히 중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을 꼽자면: 근본적인 세계관이다.
저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의 배제를 주창한다. 비폭력 대화에 기반한 공감만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가 해결 가능하다는 듯.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분노가 정당한 상황도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자면 무분별하게 환경을 오염시키는 경우처럼, ‘의로운 분노’가 필요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내 대답은 이렇다. ‘무책임한 행동’이나 ‘양심적인 행동’ ‘탐욕스런 사람’ ‘도덕적인 사람’ 같은 것이 있다는 사고방식을 내가 조금이라도 지지한다면, 그만큼 내가 이 지구상의 폭력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때리고 죽이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를 따지기보다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주의를 집중할 때 좀 더 나은 방법으로 삶에 기여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저자가 진정 이렇게 믿는다면⋯ 좋게 봐 주더라도 나이브한 접근이라고 느낀다. 세상 모두가 비폭력 대화에 공감하며 진실된 이해를 나누면 못 풀 문제가 없는, ‘나쁜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는 말이 될지 모르겠다.
하나 나는 현실에 탐욕스러운 사람, 도덕적인 사람이 분명히 존재한다 생각한다. 다양한 층위의 권력 차이 또한 명확히 실재한다. ‘선악의 구분은 무의미하고 각자 생각이 다를 뿐 이해와 공감으로 모두의 차이를 해결할 수 있다’ 라는 세계관은 과연 누구의 이득에 복무하는가?
이러한 접근은 악의와 힘을 가진 이들의 오남용에 취약함이 명확한데, 책은 그걸 방지하기 위한 수단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나마 연관된 듯한 「보호를 위한 힘 쓰기」 챕터도 어디까지나 힘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 집중하고 있다.
저자를 굳이 변호해보자면: 사람들의 평소 언어 습관이 비폭력 대화와는 너무 멀어서 관성을 이겨내려면 엄격한 기준과 지침이 중요하다 판단했을 수 있겠다. (연습문제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럼에도 이러한 세계관에서 어떠한 근본적인 단절,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게 맞나?’라는 절망을 느낀 독자가 나 뿐만은 아닐 것 같다.
정리하면: 대화에 대한 훌륭한 시각과 지침을 제시하는 책이다. 가치 판단에 대한 결벽적이며 순진한 태도에 대한 아쉬움과 별개로, 서로를 아끼는 이들과의 관계에 적용했을 때 분명 효과가 있으리라 느낀다. 살면서 몇 차례 더 읽어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