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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사랑』
그것보다 멋진 영화의 힘, 카메라의 힘, 이야기의 힘이 또 무엇이 있을까.

안문원 님은 과거 뉴코아 노동조합의 지도위원이자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의 사무처장을 역임한 노동운동 관련 인물입니다.
구글에 “뉴코아 안문원”을 검색하니 이런 문구가 나온다. 얼추 맞는 설명 같지만 얼마나 정확한지는 사실 알 수 없다. 아빠가 노조 일을 한창 하던 때 나는 열살이 될까말까 했으니. 구체적인 기억은 나지도 않는다.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 삼촌이라 부르던 회사 아저씨들의 얼굴, 인터넷 바둑 같은 스쳐지나가는 이미지들과, 조금 더 머리가 굵었을 때 가졌던 ‘아빠는 노동조합 일을 했었다’라는 자부심 정도만이 떠오른다.
이야기 할 장면으로 가득 찬 영화였지만 안문원의 아들로서는 이런 장면들을 짚어보고 싶다.
옥쇄파업 시작 무렵 노동자와 가족 모두가 비슷한 촌스러운 옷을 맞춰입고 앉은 모습.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모두가 주먹을 앞뒤로 휘두르며 후창하는 구호. 음질이 찢어지는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투쟁의 노래.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을 앉혀놓고 불러주는 과수원 길. 참여했던 이들이 ‘축제 같았다’라고, ‘인생에서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고 말하는 풍경.
그 풍경을 스크린에서 보는데 그럴만한 장면이 아닌데도 눈물이 차올랐다. 잊었던 기억이 갑자기 소환될 때면 하릴없이 멱살을 끌어잡혀 흔들거린다.
우리는 졌어요, 바를 정 자를 쓰는 정의한테 졌어요, 그게 너무 분해요⋯ 말하던 얼굴. 언제는 나를 노동 귀족이라 부르더니 이제는 빨갱이라고 부르냐며, 잘못한 것도 없이 짤렸는데 니들이라면 가만히 있을 거냐⋯ 라는 말을 결국 못 하고 급한 일이 생겼다며 먼저 자리를 뜬 술자리. 억지로 지은 웃음이 집에 오는 길에도 지워지지 않았다는, 그래서 화날 때 웃으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는 헛웃음.
긴 시간을 할애해서,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들에게 쥐어준 마이크가 감격스러웠다. 이 이야기를 영화관에서 이 많은 사람들과 보고 듣고 있구나, 괜히 상영관을 한 번 둘러보았다.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뉴코아를 그만뒀다. 정확히 왜 그만두어야 했는지는 모른다. ‘회사에게 밉보였겠느니’ 어렴풋이 생각한 정도. 중고등학생 때 학교에 부모에 대한 글을 써내야할 때가 있었다. ‘아빠는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노동조합을 하다가 잘렸다’는 식으로 쓴 걸 보여줬을 때 그런 게 아니라 정정하던 아빠의 굳은 얼굴이 어렴풋하다. (이제는 넌지시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에 대해.)
뉴코아를 나온 이후 아빠는 몇 가지 일을 전전했다. 자동차 연비를 늘리는 운전 습관 형성을 도와준다는, 요새 말로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들어가 몇 년 일했지만 결국 잘 안 됐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우유 배달 대리점을 차렸던 적도 있다. 세상엔 구리 선을 잘라 훔쳐가는 사람이 있단 걸 그 때 처음 배웠다. 중간 중간 일이 있으면 틈틈이 지방 내려가 일용직으로 노가다, 도배 일도 했던 걸로 안다. 아무튼 뉴코아 이후 몇 년 동안은 집안 형편이 매우 빡빡했다.
어린 마음에도 이 상황이 언젠가 해결이 될 수는 있는 걸까? 막막하던 때도 있었는데, 살던 아파트 단지 재건축 조합에 아빠가 취직한 이후로 대단하진 않아도 안정적인 수입이 생겼다.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호석과 미애의 가정은 (적어도 영화에서 보여지기론) 맞벌이에 호석도 금방 재취업하고, 해고 전에 비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크게 겪진 않는 듯 해 보였다. 그게 맞다면 그 부분만큼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빚을 내어 생활하고 학원비를 냈던 달도 있던 걸로 기억한다. 나와 동생이 한창 크고 공부하던 시절이라 엄마와 아빠는 우리에게 미안해 했던 것 같다. 노조 활동 없이 회사에 충성했더라면 아빠는 꽤 오랜 기간 회사에 다녔을 수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을까. 내 입장을 말해보자면, 애가 둘 딸린 상황에서도 본인이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행하고 지지할 수 있었던 젊은 남녀의 용기가 그저 멋지고 자랑스럽다.
영화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나의 부모와 겹쳐지는 호석과 미애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들은 잘못하지 않았다. 올바르다 믿는대로 행한 당신들의 모습을 철이가 보고 있으며, 이 아이는 기억할 것이다. 그러니 꼭 이겨내라.
상우의 저택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복직 안 되면 어떻게 하냐는 미애의 질문에 호석은 “살아야지.” 라고 답한다. 그 말이 눈물나게 반가웠다. 그렇지. 살아야지.

아빠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다음 카페에 가족의 사진과 영상을 연도별로 차곡차곡 아카이빙 해두었다. 이 글을 쓰면서 쟁의 현장 사진이 남아 있을까, 카페에 들어가 “파업”, “투쟁” 등을 검색해보았다. 찾으려던 사진 대신 이게 나왔다.
그런, 하루가 멀다하고 수상한 소식들이 들려오는 세상에서도 유난히 제 눈에 밟히던 소식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회 곳곳에서, 비록 티는 별로 나지 않지만 묵묵히 이 사회를 돌아가게 만들고 있는 노동자 분들의 소식들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우리 학교 청소노동자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인천공항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용역업체와 공항측의 불합리한 처우가 이슈가 되기도 했고(이 투쟁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한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하청업체 수리기사가 ‘너무 힘들었다’는 내용의 글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여당의 한 국회의원께선 국회 운영위원회 질의에서 나온 국회 청소용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두고 “이 사람들 무기계약직 되면 노무관리문제도 그렇고, 이제 노동3권 보장돼요. 툭하면 파업 들어가고 할 텐데… 이것을 어떻게 관리하겠나?” 라는, 헌법에 반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별 문제 없이 넘어갔지요. 그리고 이번 주, 민영화 반대를 위한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한 코레일의 ‘해결책’은 7천명이 넘는 노조원의 직위해제와, 주동자들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엄포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고작 스무살입니다. 많이 어리고, 또 부족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부족한 저도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이여야 하는가에 대한 조그마한 신념 하나는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직업을 막론하고 하루하루를 정직히, 또 열심히 살아내는 사람에게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주어져야 올바른 사회다’라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고, 또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줄 이 대한민국은 그런 사회인가요? 전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하지 못하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부조리들 역시 겉으로는 우리와 별 상관없는 노동자들의 일일 뿐이지만, 결국 어찌 보면 사회에서 가장 약자의 위치에 처해있는 이들의 삶을 빌려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은 아닐까요. 약자에 대한 배려 없이, 오로지 자본의 논리, 힘의 논리로만 돌아가는 콘크리트 정글이라는 단면 말이지요.
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 운동이 전국적으로 불던 때 카이스트 학관 앞에 써붙인 대자보. 구체적인 내용은 오래전 기억에서 사라진 글을 간만에 읽으며 ‘내가 이런 글을 썼었구나’ 새삼 놀랐다. 지금의 나는 이런 글을 써서 붙일 용기가 있는지. 그럴만큼 신경을 쓰고 있는지. 둘 다 아닌 듯 하여.
노동 문제에 대해 대단한 당사자성을 가진 양 썼지만 사실은 시간이 흐르며, 우리 가족도 나도 그로부터 점점 멀어져만 온 듯 하다. 일을 시작하고 몇 년, 어느정도 안정적이고 대우도 (내 딴엔) 괜찮은 생활이 지속되니 점점 뉴스를 보기 싫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대단하게 버는 것도 아닌데, 좀 살만하니 신경을 쓰기 싫네? 내 앞가림만 하고 싶네?
2019년, 지금 회사에 합류할 때 기뻤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그런 멀어짐을 뒤집을 수 있겠다는, 노동 문제의 사회적인 해소에 작게나마 일조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었다. 몰라서 못 지키는 사람도 많을텐데, 적어도 있는 법은 잘 지킬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줄 수 있겠다. 이게 기술의 순작용이지.
막상 일해보니 B2B 사업이란 게 늘 상상했던 대로만 흘러가진 않았다. 그런 보람을 느낄 순간도 없진 않았지만, 세상엔 법을 안 지키고 싶은 겁 없는 회사도 많고, 반대로 내가 봐도 너무하다 싶을만한 직원들도 많고, 돈 내고 쓰는 서비스가 고객에게 어떠한 가치를 주장하고 가르치려 드는 건, 엄청나게 영향력이 생긴 후라면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건방지고 위험한 일이고⋯
스스로가 점점 자랑스럽지 않아도 그냥 다들 이렇게 나이 먹는 건가 생각하며, 면죄부를 사듯 정기적으로 몇몇 단체에 작은 후원금만 보내며. 회사에서 이따금 ‘그래도 근로자 관점에서 이건 아니지 않냐’며 화도 내고, 그러면서도 대부분 결국 받아들이며.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대자보를 써 붙인 스무살은 지금의 나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볼까. 투쟁이니 연대니, 그런 말이 제일 싫어요. 그거 다 거짓말이잖아요⋯ 영화를 보는데 이 말이 나를 향한 말처럼 들려서 아팠다. 고작 이게 아프다니 싶은 마음에 부끄러워 더 아팠다. (계속)

『가능한 사랑』이란 제목은 영화 내에선 무엇보다 예지의, 즉 창작자의 윤리에 대한 물음으로 들린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과연 이 질문이 꼭 찍는 자와 찍히는 자, 재벌과 서민이라는 극단적인 입장차 위에서만 유효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르게 묻는다면, 우리는 어떤 거리부터 사랑이 불가능하다 느끼는가?
그 한계 거리는 갈수록 짧아지는 것 같다. 버스 기사들이 어떤 불합리함 때문에 파업했든, 장애인들이 보장하라며 시위하는 이동권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이든, 아무튼 나의 때맞은 출근을 방해하는 일이라면 짜증부터 나는 것처럼. 가족 내지는 늘 살 부대끼는 범위를 조금이라도 넘어선 이에 대한 사랑이란 많은 경우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그 불가능성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알 수 없음’이 큰 자리를 차지하리라. 알 수 없는 이유는 보이지 않고 볼 일이 없기 때문일테고. 코끼리가 사라지듯 눈 앞에서 사라지는 건 비단 노동 뿐만이 아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삶을 사는 타인 모두를 눈 앞에서 치우고도 얼마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하루가 달리 다가가고 있으니.
그렇다면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서로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둘이 선 다른 자리 사이 도랑을 뛰어넘고, 불완전할지언정 사랑이 가능하다 믿고 시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문제로부터 답변 또한 자연스레 드러나는 듯 하다.
우리는 서로 알아야 한다. 알기 위해선 많은 노력과 진심이 들고 쉽지 않겠지만, 그 전에 우선 알고 싶어해야 한다. 알고 싶어지려면 그 계기, 타인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할테고. 그 계기는 대단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저 이가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섣부른 판단을 내려놓고 그저 바라보는 몇 시간이면 충분할 지도.
집단 상담 장면이 반가웠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적어도 여기서 이를 보는 동안은 우리 함께 눈 돌리지 못하고 이 얼굴을 보고 그 삶을 상상할 테니. 그 시간이 누군가에겐 잊고 있던 유년기의 기억을 끌어올릴 부표가, 누군가에겐 뉴스에서 마주한 파업 소식에 습관적인 판단을 내리기 전 걸림돌이, 그리고 누군가에겐 내 말을 세상이 듣고 있다는 작은 위안이 될 테니.
이창동 감독은 이 이야기를 만들며 감독으로서 피사체를 향한 사랑에 내포된 불가능성에 대해 많이 고민한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그 자신의 것과는 다를지 모르지만, 어떤 또다른 불가능했던 모양의 사랑을 조금은 가능에 가깝게 빚어낼 씨앗을 뿌렸다 느낀다. 만약 정말 그러했다면 그것보다 멋진 영화의 힘, 카메라의 힘, 이야기의 힘이 또 무엇이 있을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구조적인 해법 없이 개인적인 수준의 알아감을 이야기하는 게 지나치게 나이브한 접근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가 “자본에게서 독립”하지 못하고 상우, 아니 넷플릭스와의 결혼을 통해서만 만들어졌단 아이러니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수많은 개인들의 작은 꼬물거림이 모여 결국 세상을 바꾸는 군무가 만들어지는 일도 얼마든 있기 마련 아닐까. 아니 오히려 그 방법 뿐일지도.
이러나 저러나. 다른 이도 아닌 이창동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서 좋았다. 극장에서 만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또 보고 싶다.
이하 글의 대주제와는 벗어나지만 남겨두고 싶은 단상들.
- 엔딩이 굉장히 로맨틱하다고 느꼈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끝날 줄 몰랐는데 당했다⋯
- 처음 달이 등장한 쇼트에서. 화면 상의 변화 없이 달을 오래동안 비추며 미애의 내레이션만 조곤조곤 얹혀지는데 마법에 빠진 기분이었다. 매우 길었음에도 끝났을 때 아쉬웠다.
- 호석의 새 직장이 나오는 쇼트가 세 개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여주지 않았더라도 전체적인 이야기의 진행에는 지장이 없었을 장면들이지만, 보여줘서 좋았다. 새 직장 동료들이 아주 친절하진 않아도 나쁜 사람들 같지 않아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다치지 말고 잘 지냈으면.
- 예지는 분명히 뚜렷한 한계를 지닌 사람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녀의 사랑하려는 시도가 모두 거짓, ‘메소드 연기’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믿고 싶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한들, 거리를 좁히는 일에는 첫 발걸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 미애의 자유에 대해 박수.
- 촬영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다이나믹⋯? 하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초반에는) 약간 정신없는 느낌이 들었어서 조금 더 차분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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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쥬 드 아난티
원한다면 언제든 빌라쥬 드 아난티에 묵을 수 있는 삶은 어떨까.

1.
원한다면 언제든 빌라쥬 드 아난티에 묵을 수 있는 삶은 어떨까. 아무래도 그렇지 못할 때보단 더 행복할까?2.
6년 근속으로 받은 3주 유급 휴가가 끝났다.고등학교 친구들과 나트랑, 배우자와 후쿠오카, 양가 가족과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마지막 부산에선 빌라쥬 드 아난티라는 고급 숙소에서 묵었다. 회사에서 휴가와 함께 제공해준 2박 3일 숙박권 덕이었다.
방과 거실 모두에서 보이는 기장 바다와 용궁사 전망은 기가 막히고, 침구와 어메니티는 하나같이 깔끔하면서도 포근했다. 너무 많아 별도의 안내 지도가 필요하던 실내 및 야외 수영장은 살면서 가본 개중 가장 넓고 관리가 잘 돼 보였다. 로비, 방, 복도까지 하나같이 층고는 높고 공백도 충분한 공간에 내 마음도 넉넉해지는 듯 했다.
첫 날은 배우자의 동생 부부, 둘째 날은 내 양친을 초청해 함께했다. 그들도 즐거워했다. 엄마는 몇 번이고 말했다. “정말 숙소가 너무 좋다, 우리 앞으로도 같이 이런 데 더 자주 다니자.” 물론 아들과 함께라면 어디든 안 좋겠냐만은– 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 말을 들으니 마음 속 뭉근하게 끓던 불편함이 형체를 갖추고 떠오른다. 나는 앞으로도 이런 곳에 더 자주 다니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이 정도는 부담 없이 누릴 수 있게 ‘더 열심히 사는’ 삶이 내게 맞는지 고민되고, 여기서 좋았던 순간마다 한편으론 동시에 묘한 씁쓸함이랄지 불안함, 뛰쳐나가고픈 기분을 느꼈다고.
그러나 좋은 마음으로 던진 말에 이런 답은 내가 생각해도 영 이상한 반응이라, 웃으면서 말을 슬쩍 돌려본다. 복잡한 속과는 무관하게 기뻐하는 부모를 보니 나 또한 기쁘다.
3.
첫날엔 짐을 풀자마자 하진과 주된 야외 수영장을 찾았다. 해가 지기 시작한 시각인데다 세찬 바닷바람 덕에 쌀쌀했지만, 막상 물 속에서 움직이다보면 몸이 금세 더워졌다. 그럼에도 첫 발을 담글 때만큼은 아찔할만치 차가워서인지, 단지 평일이어서인지 사람은 거의 없어 넓은 수영장을 둘이 전세 냈다.눈 닿는 풍경마다 예쁘고 방만하다. 멀리 기장 바다에서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바스라진다. 해질 무렵 수평선 위는 보랏빛으로 물들고, 구름은 누군가 길게 찍어둔 말줄임표처럼 비슷한 높이에 점점이 줄 서 있다. 배영하듯 누워 바라본 하늘엔 간격을 두고 우뚝 선 매끄러운 흰색 건물들 사이로 까마귀떼가 날갯짓하며 알 수 없는 무늬를 그린다.
입술이 퍼래질 때쯤 나와 젖은 수영복을 입은 채 방에 돌아오는 길, 단지 내 건물을 하나씩 둘러본다. 문을 닫은 베이글 가게는 메뉴가 참 다양하다. 매점엔 식료품은 물론 ‘대체 여기서 이런 걸 사는 사람은 누구지’ 의문이 들만큼 러그, 접시, 올리브유까지 온갖 물품이 구비되어 있다. 의외로 충실한 서적 코너 구성에 잠깐 놀란다.
호텔 건물 일 층 브런치 가게도 오늘 영업은 마친 시각. 내일 아침을 여기서 먹을까– 메뉴판을 보니 커피가 만 원이 넘고 브런치가 삼사만원. 잔인한 범죄 현장 사진이라도 본 양 빠르게 고개를 돌린다. “방에 캡슐 커피가 있던데 아까 베이글 사서 그거랑 먹자!” 공범이 된 듯한 웃음을 나누며 걷는다.
저녁바람은 딱 좋을만큼 서늘하게 서걱거려 기분 좋게 피부를 간지럽힌다. 여긴 뭐랄까 한 마디로, 참 쾌적하다.
다른 지점들은 어떨지 궁금하고, 이번에 못 온 장인 장모님, 동생도 데리고 와보고 싶다. 회원권 가격을 찾아본다. 억이 넘네. 그런데도 방값은 몇십씩 또 따로인데다 그마저도 예약이 힘들다니. 예전에 친구가 이야기한 비슷한 컨셉의 하이엔드 별장 회원권, 그건 얼마더라? 아 얘도 비슷하구나.
4.
나는 달콤한 상상에 빠진다.억이 넘는 돈을 박아 두고도 일박에 몇십쯤 아무렇지 않게 내는 삶에 대하여. 이 수영장과 숙소가 늘 손닿는 곳에 있다면 얼마나⋯ 안락할까. 여기까지 와서 배달시킨 저녁을 받으러 주차장까지 걸어나가는 대신 룸서비스를 양껏 시켜먹는 풍족함, 바깥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이 찍힌 메뉴판 앞에 주저없이 카드를 내미는 산뜻함에 대한 공상.
이러한 상상은 – 내가 자주 그러하듯 – 달콤한 채로 끝나기 전 옆 길로 샌다. 그러한 삶을 위해 치룰 대가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으로. 장기 근속과 황금 (혹은 황동) 수갑, 낯선 이들과 널뛰는 숫자가 선사할 끊임 없는 스트레스, 복종과 삼킨 말과 감은 눈 따위에 대한 재잘거림으로.
세상엔 공짜가 없다고들 한다. 가격표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삶에 붙는 가격표엔 무엇이 적혀 있으려나.

5.
삶의 궤적마다 찍힌 점들은 늘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연결된다.나는 무언가를 얻자마자, 또는 얻기도 전부터 그걸 유지보수하기 위한 비용부터 고민하는 게 익숙하다. 아무래도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시절에 본격적으로 내 동작 원리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습관인 듯 하다. 일터에서 적용하고자 하던 원칙이 일터 밖으로 넘쳐흐른 셈이다.
물론 이러한 습성은 프로그래머라는 직군보다는 실은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정말 복잡하고 어렵고 수십가지 방식으로 잘못될 수 있지만 엄청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일에 본능적으로 더 흥미를 느끼고 덤벼드는 동료들도 늘 있었으므로. 단지 내가 천성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끌리지 않았던 것 뿐이다.
시간이 갈 수록 물건을 살 때도, 관계를 늘릴 때도 – 단순히 처음 구매할 때의 가격을 떠나 – 자신에게 자주 묻는다: ‘이걸 가꾸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가?’, 그리고 ‘그걸 기꺼이 지불하고 싶은 마음이 진정 드는가.’
답하며 살다보니 어느새 강제적으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6.
지난 삼사년, 나의 머리 한 구석엔 이러한 단어들이 얼기설기 얽힌 채로 자리하고 있었다: 나의 소시민성. 야망의 크기 (보다 정확히는 야망의 부재). 적당함. 좁지만 고요한 울타리.나는 ‘당연히’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가져야 하는가? 삶은 살아있는 한 누구에게나 투쟁과 전진이어야 마땅한가? 어릴 땐 다른 가능성이 있으리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질문들이다. 나이를 먹으며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단 마음이 새싹 돋듯 고개를 쳐들지만, 정작 그렇게 답하려 할 때면 왠지 모를 수치심이 느껴진다.
또한: 물건이든, 음악이든, 음식이든, 인테리어든⋯ 무엇이 진정 좋은지 알게 되고, 자연스레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을 민감하게 구분하는 (구분할 수 밖에 없는) 안목은 과연 개인에게 축복일까? 혹은 그로 인해 견딜 수 없는 어떤 상황들이 누군가에겐 저주로 작용할 수도 있을까.
7.
몇 달 후엔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 그걸 생각하니 문제가 조금⋯ 아니 더 많이 복잡해지는 것 같다.너에게 충분한 것이 너의 아이에게도 충분할 것이냐? 그렇지 않다면 어쩔 셈이냐?
너의 아이를 위한다면 늘 더 많이, 더 좋은 것만을 주려 해야 할 것이냐? 그러나 더 많이, 더 좋은 게 무엇인진 누가 정한단 말이냐?
부모와 함께 수영하는 저 해맑은 아이들을 보라. 네 아이에게도 저 나이 때 이런 추억들쯤은 선사할 수 있어야 멋진 아빠라고 할 수⋯ 있으려나⋯?
8.
2019년엔 소셜 미디어에 “인생은 계단이 아니라 벌판이다– 라고 믿기로 했다.”라고 적었다. 2021년에 같은 문장을 조금 더 늘여 『계단과 벌판』 이라는 글로 적었다.(⋯) 인생이 계단이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올라가거나, 정체되거나, 떨어지는 것 뿐이다. 정체되거나 떨어질 수 없으니 어떻게든 위로 한 발짝 또 떼고 나면 땀 한 번 닦고 그 다음 단을 오르기를 언젠가 더 이상 못 오르는 순간을 만날 때까지 반복하는 일.
하지만 인생이 벌판이라면 우리는 가만히 누워 구름 흐르는 걸 바라보고, 취해서 춤 추고, 고양이와 낮잠도 잘 수 있다. 가끔 계단도 오르겠지만, 언제라도 내려와 쉴 수 있고, 사실 세상에는 수많은 계단이 존재하며 무엇을 언제 어떻게 오를지는 오롯이 내 선택일 것이다.
다짐은 다짐일 뿐, 가끔 정신차려 보면 또 계단인 듯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세상에, (초)성장이 지상과제로 여겨지는 스타트업 업계에 몸 담고 있다보니 쉽지 않겠지만… 그 믿음이 흐려지지 않길 바란다.
플렉스 근속 칠 년을 바라보는 시점에, 육 년 근속 장기 휴가를 마치는 글을 쓰며, 일 년 반쯤 다닌 시점에 적은 글을 들춰보고 있다. 누구에게나 주기적으로 반복해 찾아오는 주제들이 있다면 내겐 이 계단과 벌판의 이미지가 바로 그것인지 모르겠다. 이번이 마지막도 아닐 거란 예감이 든다.
같은 주제를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으면서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을 못 낸 듯한 자신이 사실은 다소 한심하다. 다를 바 없는 원만 반복해 그리는 듯 보이는 궤적이지만, 고개를 꺾어보면 실은 조금씩 위로 나아가는 나선일까? 그러길 바랄 수 밖에.
원한다면 언제든 빌라쥬 드 아난티에 묵을 수 있는 삶은 어떨까. 아무래도 그렇지 못할 때보단 더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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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xRESIST』
꼭 한 번 시간을 내서 플레이해보길 강하게 권장(부탁)한다.

『1000xRESIST』는 일국양제와 2047년, 거대한 붉은 억압자, 우산 혁명과 홍콩 민주화 운동, 천 번의 저항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세대에서 세대로 유전되는 트라우마, 부모와 딸과 딸의 딸과 딸의 딸의 딸, 자매–복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시에 원죄, 이념과 종교, 성전과 경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아시아 디아스포라, COVID-19와 그를 둘러싼 인종적 시선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되풀이되는 역사와 기억, 저지른 실수와 벌어진 상처, 질투와 이해, 응징 또는 용서, 어디에 선을 그어 무엇을 버리며 무엇을 안고 나아갈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열 시간 남짓한 플레이타임 안에서 얕거나 산만해지지 않고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다룬다는 불가능해보이는 과제를 달성해냈단 게 개발진의 역량의 방증이다.
제작사 「sunset visitor 斜陽過客」는 4명의 풀타임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밴쿠버의 인디 게임 스튜디오다. 이들은 시각 예술, 춤과 연극, 작곡 및 무대 조명, 뉴미디어 아트 등 게임 개발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각자의 커리어를 쌓아가며 만난 사이다. 그러던 중 COVID-19로 인해 주된 창작 및 생계 수단인 공연 기회가 사라졌다. 이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선택한 수단이 게임이었다. 『1000xRESIST』는 그들의 첫 게임이다.
이러한 팀의 역사는 결과물에 진하게 녹아들어있다. 이 게임은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법을 알고 있다. 게임 속엔 “빨강이 파랑 되기를”, “여섯이 하나로”과 같은, 말버릇처럼 되뇌여지며 상황에 따라 여러 의미로 해석되는 경구들이 등장한다. 재밌는 점은 게임 자체의 소재와 이야기 역시 그러한 수많은 해석의 방향을 내포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서브텍스트를 동작하게 하는 동력은 다음과 같다: 함축적인 대사, 챕터 별로 파격적으로 전환되는 (여러 의미의) 시점, 시공간을 깨트린 뒤 뒤섞어 내미는 비선형적 스토리텔링, 주술적으로 반복되는 앰비언트 전자 음악 등. 게임 속 마법적 순간이 게임과 무관한 개발진의 기존 배경에 기대고 있음이 명백하게 느껴질 때마다 하릴없이 감탄했다. 우리가 전혀 동떨어져있다 생각한 것들이 사실 맞닿아 있음을 발견하는 일은 얼마나 잦은지!
게임 속엔 아시아계 이민자로서의 개인사, 모국에 대한 억압과 저항의 역사, 게임을 만들게 된 계기인 COVID-19, 게임이라는 매체와 스토리텔링 등의 다양한 소재에 대한 개발진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가 가득하다. 그러나 이 모두는 인류 멸망 후 마지막 남은 복제인간들의 이야기 속에서 결국 누구나 일부분 깊게 공감 가능한, 보편성을 획득한 무언가로 재탄생한다. 모두가 서로를 지지하는 동시에 받쳐내며 무너지지 않는 구조물을 엮어낸 솜씨가 경이롭다. 브라보!
물론 장점만 있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이 게임에는 실질적인 게임 메카닉이 전무하다. 실패 상태가 (한 부분을 제외하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게이머의 행동은 대사를 읽고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이동하며 스토리를 감상하는 게 전부다. 사건이 제시되는 순서 자체는 조각났고 비선형적이지만, 게임의 진행은 반대로 곧은 직선의 컨베이어 벨트 위를 달려간다. 그 외에도 대사나 길 찾기 등 소소한 편의성 문제들도 존재한다.
따라서 게임을 끝낸 후, 감탄하면서도 ‘과연 게임이어야 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처음엔 아닌 것 같았으나, 곱씹어보며 다른 매체, 예컨대 공연이나 책, 영화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게 되었다. 일례로 이야기의 핵심 소재인 ‘교감 의식’부터가 게임을 매체로서 구별짓는 가장 큰 특징인 상호작용성과 정면으로 맞닿아있다. 이 이야기는 이 방식으로, 내가 직접 체험했을 때 비로소 온전히 전달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같은 스케일을 다른 매체로 구현하려면 맞닥뜨릴 예산 등 현실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다.)
이 게임의 ‘게임성’ 부족은 역설적으로 평소에 게임을 즐기지 않는 이들에겐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원인이기도 하다. 뛰어난 컨트롤이나 전략적인 사고가 전혀 필요 없으므로 마우스나 키보드만 쓸 줄 알면 누구나 플레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리뷰가 흥미롭게 느껴진다면, 서두에 언급한 소재들 혹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제 자체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 시간을 내서 플레이해보길 강하게 권장(부탁)한다. 나 역시 몇 번 더 플레이할 생각이다. 이 글에서 다 못 풀어낸 감상을 친구들과 열심히 떠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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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반느』
지금껏 너무 좋게 보아서 글로 남기지 않을 수 없는 컨텐츠에 대해서만 썼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험도 기록하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 여운이 남거나 또 보게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왜인고 생각해보니 이 영화를 끝까지 본 후에도 딱히 요한, 미정, 경록이라는 세 인물을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기분이 들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영화가 던져주는 정보들이 없지는 않다. 허나 이는 영화 내의 등장인물 아무개 역시 그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파악할 수 있었을, 인간의 지층 중 상대적으로 표면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그게 아닌 심층에 어떤 무늬가 기록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 기분이다.
그 힌트일 수 있는 각 인물별 전사, 설정, 사건들이 제시되지만, 마치 소설의 ‘인물 소개’ 섹션에 소개된 짤막한 문장들처럼 그냥 툭 떨어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스가 잘 묻지 않고 면과 따로 노는 파스타처럼.
지금껏 너무 좋게 보아서 글로 남기지 않을 수 없는 컨텐츠에 대해서만 썼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험도 기록하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나의 불호가 정확히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그 불호가 작품에게 과연 정당한지 검증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추후 생각이 바뀐다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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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준비, 돌아가며
바다를 건너서, 하늘을 날아서⋯
식기세척기 마른 그릇을 꺼내 서랍장에 쌓아넣는다. 싱크대를 솔질한다. 냉동실 얼음틀을 꺼내 물을 붓고 얼음을 얼린다. 재활용 쓰레기를 비운다. 반도 안 찼지만 음식물 쓰레기도 버린다. 더운 날에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참기 어려운 냄새가 나니까.
‘타월’ 모드로 세탁 후 건조시킨 수건을 차곡차곡 개켜 욕실 서랍장에 넣는다. 세면대 거울 앞 흐트러진 로션 통과 머리핀, 오일이 널브러지고 자꾸 떨어지는 게 거슬려 주방에서 쓰던 바구니를 하나 비운 뒤 화장실로 가져와 정리해 담는다. 다 쓴 치약을 버리고 새 치약으로 바꿔두려 창고를 뒤지다 못 찾고 포기한다.
고양이 화장실에서 삽으로 배변을 퍼내 봉투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린다. 혹시 그 새 또 초파리가 생기거나 알을 까진 않았는지 체크한다. 책상 아래 하나, 옷방 거울 옆 하나 고양이 정수기 케이블을 빼내 물을 새로 한 번 갈아준다. 부엌 서랍장 아래칸 사료 포대를 꺼낸 뒤, 고양이 사료통으로 쓰는 밀폐용기를 채워넣는다.
새로 산 매트리스가 왔다. 이불 커버와 베개 커버를 꺼내 ’침구’ 모드로 세탁기와 건조기를 연달아 돌린 뒤, 베개와 이불에 씌우고 시트를 매트리스 위에 덮는다. 이틀간 충분히 환기 시킨 뒤 방수 커버를 씌운다. 침대를 샀던 집 근처 매장에 방문해 눈독 들였던 새 베개를 주문한다. 침실 바닥, 하는 김에 거실도 진공 청소기를 한 번 돌린다.
건조기에 있는 그녀의 빨래를 꺼내 책상 위에 종류별로 개어둔다. 빨래를 올리다 보니 책상에 똑같이 생겨서 맨날 헷갈리는 USB-C 케이블 – 하나는 충전기, 하나는 모니터 – 이 눈에 밟힌다. 충전기 쪽 케이블에 종이 테이프를 감아 표시해둔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나트랑으로 놀러 왔다. 한 때 무척 친했던 사이가 많이들 그러하듯 특별한 이유 없이 각자의 삶이 바빠지며 멀어졌지만, 24년 초 정기적으로 등산을 같이 다니면서부터 다시 자주 보고 있다. 모임에서 세부, 제주도, 속초 등 몇 차례 여행을 다녔는데 이번 여행이 개중 가장 긴 일정이다.
긴 여행은 곧 배우자를 혼자 두고 집을 비우는 날이 길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같이 살기 시작한 이래 하진은 학회 때문에 일주일 남짓 해외에 나갔던 적이 있지만, 내가 이 정도로 오래 비운 적은 처음이다. 임신한 상태라 더더욱 그렇지만, 여행에 대한 기대가 커질수록 혼자 두고 떠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부채감 역시 늘었다.
그런 마음을 보상하려는 양, 이삼일 전부터 떠날 준비를 했다. 집에 혼자 있을 하진의 하루를 상상하며, 뭔가 필요하거나 미세한 턱에 걸릴 상황을 하나씩 그려보며 그마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덜 외롭게 만들 방법을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할 일은 많고 시간도 잘 갔다.
준비를 하다문득 생각했다. 고작 오 일 집을 비우는데도 이렇게 챙겨야 할 게 계속 떠오르는구나. 내가 만약 먼저 죽는다면 그 때는 어떨까. 며칠은 커녕 남는 이들의 여생을 생각할텐데, 아무리 해도 그 준비가 끝나지 않겠구나. 바구니로 바닷물을 퍼내야 하는 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생각을 하니 서글프다. 그따위 준비는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상대에게 시키고 싶지도 않다. 무엇이 더 낫고 무엇이 더 나쁜지 선택이 불가능한, 오답 뿐인 질문처럼 느껴진다. 머리 속에서 생각 자체를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와 조금도 상관 없게도 우리 중 누군가에게 그 순간이 찾아올 것을 확실하게 알기에 더 서글프다.
그러나 바꿀 수 없다면 미리 걱정은 무의미. 떠나야 할 날이 조금이라도 덜 아쉽고 덜 후회하기 위해선 살아있는 매 하루를 충실하게, 마지막인 듯 살아가는 것 말곤 방법이 없으리라. 늘 떠날 준비를 하는 마음으로, 늘 너에게 돌아가며 살아야지, 소리내어본다. 이상하지만 묘하게 맞는 기분이 든다.
더운 나라의 리조트는 휴양지로 더할 나위 없다. 오전과 낮에 열심히 먹고, 약간의 러닝, 헬스와 상당한 수영을 한 뒤 나른한 상태로 방에 들어와 씻고 침대에 누워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 또 언제 올지 모를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겁지만, 마음 한 구석은 이미 슬그머니 한 뼘씩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바다를 건너서, 하늘을 날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