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를 얻으면 정말 자유로워질까?
그 다음엔 뭐가 있을까?
모두가 ‘경제적 자유’ 이야기다. 주식이나 비트코인, 부동산 등에 큰 관심 없이 살고 있지만, 나 역시 유망한 스타트업의 초기 멤버로 합류하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비슷한 목표를 이루는 꿈을 꾸고 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너무나도 멀지만, 하루는 만약 그 목표를 달성한다면 그 이후엔 무엇이 있을지 상상해보았다.
우리 회사가 크게 잘 되서 여유 자금이 한 30억 원 생겼다 치자. 금융은 잘 모르지만, 저 정도 돈이면 가용 매체도 다양할 테고, 단기 손실을 감수하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투자할 수 있을 듯하다. 보수적으로 생각해도 연이율 3% 정도는 안정적으로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원금을 안 까먹어도 연 이자만 세전 30억 * 0.03 = 9,000만 원이다.
다양한 세금이 나가겠지만, 지금 정확한 계산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그에 필요한 지식도 없다. 다만 그런 요소를 다 고려해도 이 돈만 있어도 사치 부리지 않으면 나와 내 가족이 먹고사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 같긴 하다.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된다! 그야말로 경제적 자유다! 정말 그럴까?
물론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적지 않을 것이다. 내 시간을 돈으로 팔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을 자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지하철 버스 대신 택시를 탈 자유, 먹고픈 걸 먹고 보고픈 걸 볼 자유… 사회생활 시작할 때 정말 간절하게 원했던 바람들인데, 아직도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정도 돈이 생기면 상황이 꽤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나와 내 가족 말고도 챙기고픈 사람이 많다. 병원에서, 급식실에서, 농장과 공장 또 청소 현장에서 일하는 친척들. 살며 사귀었고 이제는 길이 갈라진 친구들, 선후배와 고마운 스승님들까지.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내 삶을 지탱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있다. 내 택배를 책임져주는 기사분들, 동네 식당과 카페 주인분들, 우리 고양이들을 구조하고 입양해주신 고양이 보호 협회 활동가분들. 수십 년 후면 우리 사회의 허리가 될 아이들.
그들의 삶을 내가 해방시키거나 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건 너무 오만한 생각일뿐더러 내겐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또 내 삶을 구성하는 사람들과 나눌 수 없다면, 나와 내 가족만 넓고 멋진 집에서 맛나고 따순 밥 먹으며 과연 나는 정말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언젠가 지인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힘이 센 사람이 남에게 무력을 행사하여 피해를 주거나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게 당연한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러한 행동을 비문명적이라 여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력도 동일한 방식으로 동작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건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듣고 ‘그러네? 왜 이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쭉 이래서 그런가?’ 같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개인에게 30억은 까마득히 큰돈이지만 그 돈이 우스울 자본, 권력은 세상에 너무 많다. 내가, 또 내가 사랑하는 이가 그런 ‘힘 센’ 자들의 심기를 건드렸을 때 30억으로 산 자유가 얼마나 유지될까? 하고픈 말을 참아가며 그런 일을 피하려 한들, 《나는 자연인이다》 출연진들처럼 산속에 틀어박혀 세상과의 연결을 끊지 않는 이상 맘처럼 되지 않을 가능성은 얼마든 있다. 철탑에 오르고 한파를 텐트로 버티는 이들이 바랐던 것은 고용 보장, 생존뿐이었을지 모르듯이.
아무리 호신술로 무장을 해도 총 든 상대를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자유라면 훨씬 더 큰 돈에 의해 언제든 뺏길 수 있을 것만 같다.
30억이 내가 바라는 자유를 사는데 충분하지 않다면, 얼마면 될까? 50억? 100억? 아니 1,000억 정도는 있어야 할까? 내가 30억을 버는 날이 언제 올지도 까마득한데 그 이상 얼마인지 알아내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애초에 큰 질문부터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세상에 나름의 방식으로 자유로운 모든 이들이 그만한 돈부터 벌었기 때문에 자유를 찾은 것 같지는 않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은 것은 아닐까?
무엇이 사람을 진정 자유롭게 만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