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구매기 3: 스팀덱, 유니클로 치노 팬츠와 호갱노노

집은 안정감. 집은 갓 빨아서 갠 태양 냄새 나는 수건. 집은 고양이와 아이의 잠자리. 집은 딱 좋을 만큼만 펑퍼짐한 튼튼한 바지.

집 구매를 결심할 때의 마음은 이러했다:

일이년마다 짐 싸서 이사 다니기 지겹다. 고양이 기른다고 눈치 그만 보고 싶다. 대단한 투자 수익은 바라지도 않고 ‘우리 집’이라 부를 공간을 꾸리고 싶다.

우리는 리모델링 사업이 진행 중인 집을 샀다. 빠르면 연말부터 이주 나가 몇 년 떠돌아야 한다. 다음 셋집 구할 땐 고양이 때문에 또 전전긍긍하겠지. 한편 일단 버티면 투자 수익은 기대해볼만 한가 싶은데.

한 마디로 원래 생각과 정반대의 선택을 한 셈이다. 대체 어쩌다?

올해 초, 8월 전세 만기에 맞춰 집을 구하려던 우리는 집값이 오르는 속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부동산 앱을 보니 분당엔 이미 우리 예산으로 갈 동네가 없었다. 도시를 옮겨야 함을 받아들이고 단지를 몇 추려 부동산을 찾았다.

사장님은 믿음직스럽던 첫인상만큼이나 추진력이 상당했다. 다음 날부터 후보를 보내시더니 사흘째 아침, 야탑에 지금 예산으로 들어갈 집이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

‘다만’, 단서가 덧붙여졌다. 리모델링 단지라 공사하는 삼사년은 집을 비워야한다고. 국민 평형이 되는 집은 분담금까지 하면 예산 초과지만, 이 매물은 작은 평수로 가는 덕에 예산 내인데 이런 집이 자주 나오는 게 아니라고.

이건 계획과 다른데? 애초에 이사를 그만 다니려 집을 사려던 건데. 하지만⋯

살던 집 앞단지 리모델링이 끝나가던 때였다. 누가 저 돈 주고 여길 사, 기겁했던 분양가에 팔리는 집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었다. ‘세상에 부자가 참 많구나’라던가, ‘분당 신축이 귀하긴 한가보네’ 따위의.

그럼 리모델링 후엔 여기도 그만큼 비싸지나? 아니지, 그새 물가도 오를테니 더하겠네. 사오년 더 고생해서 애가 학교 다닐 때쯤 더 나은 동네로 옮길 수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하지 않을까? 월급으로 집값 못 따라잡는 건 이번에 확실히 느꼈잖아. 어영부영 망설이다 이번에도 못 사면 다음부턴 선택권조차 없을지 몰라!

퇴근 후 방문한 단지는 번화가와 떨어져 조용하고 좋아 보였다. 전 주인이 이십몇년 산 집 상태는 여러모로 곤란했지만, 몇 달 살고 허물어진다면 큰 문제는 아니고⋯ 이게 마지막 기회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우리를 사로잡았고 이 집은 하늘에서 내려온 마지막 동앗줄인 듯 했다.

사장님의 부추김 살짝을 곁들인 고민과 정당화 끝에 다음 날 홀린듯 가계약금을 걸었다. 조마조마한 마음 탓에 흥정은 생각도 못 하고 호가대로 사겠다 하니 사장님이 이천 오백 만원을 깎아오셨다. 호구 될 뻔 했네, 아니 지금도 호구인가, 중얼대면서도 신났다.

한 달 후 본 계약을 위해 부동산 가는 길, 문득 얼마 전 산 스팀덱과 유니클로 치노 팬츠가 떠올랐다.

스팀덱은 출시 때부터 사고 싶었다. 플레이스테이션에 안 나오는 인디 게임이 좀 많은가. 그럼에도 게임기가 정말 하나 더 필요한가, 과연 얼마나 쓸려나 따위 고민으로 용돈에서 조금씩 모으다 돈이 필요하면 빼 쓰길 이 년. 결국 결심하고 중고로구했는데, 막상 사고 나니 왜 이리 오래 걸렸나 싶을만큼 좋았다.

치노 팬츠는, 오육만원 했나? 이전 바지가 찢어진 뒤 ‘하나 있긴 해야지’ 싶어 몇 달 간 대여섯 브랜드를 전전하면서 입어보고 빈 손으로 가게를 나서길 반복했다. 뭔가가 안 맞는 듯 했다. 그러다 유니클로에서 흔하지만 정확히 맘에 드는 바지를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둘 다 구매까지 오래 걸렸지만 이유가 돈은 아니었다. 살다보니 정말 내게 필요한, 딱 맞는 물건이 아니라면 안 갖는 게 오히려 행복에 가까울 수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랄까. 그 원단의 촉감 또 그 컨트롤러의 그립감처럼, 나 자신과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어울리는 것을 주변에 둘 때만 오는 즐거움이 있는 법이다.

한편 지금 사려는 이 집이라는⋯ 물건. 고민의 역사가 있다지만 그 둘과 비교할 수 없을만치 비싸고 오래 쓸텐데. 한 번 보곤 다음 날 계약이라니. 정말 이래도 되나? 헛웃음이 나왔다. 나쁜 기분은 아니지만 이 돈을 써서 뭔가 산다면 더 흡족할 줄 알았는데. 애초에 우리가 이 집을 왜 샀더라?

내가 느낀 건 만족감이라기보단⋯ 숙제를 마친 홀가분함, 파도가 몰아칠 때 표류하진 않겠단 안도감. 뭐 그런 것들? 오묘한 마음으로 새 등본을 확인하고, 사인하고, 계약금을 송금했다. 무튼 드디어 집을 구했다! 집 때문에 맘 졸이는 나날도 끝이다⋯ 물론 삶이 보통 그렇듯 생각한 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주택 구매 후보다는 구매 전에 부동산 정보를 열심히 찾아볼테다. 아직 결정 전이라면 그 내용에 따라 다른 선택이 가능하지만, 일단 일이 벌어진 후엔 무언가 더 알게 된들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몇 없을 테니.

계약 전 하진과 나눈 대화도 ‘구매 후’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다짐과 같았다. ‘만약 이 투자로 1,2억 손해를 본다면 어떨 것 같아?’ 속은 좀 쓰려도 괜찮을거야, 우린 생각했다. 어차피 살 집은 필요하고, 집 없는 불안함에선 벗어나지 않겠는가. 리모델링만 잘 되면 다음 집을 구할 땐 선택지가 조금이라도 많을테고.

집을 사고 나니 내가 합리적인 사람이 아님을 여실히 느꼈다.

계약 직후부터 그 전보다 수십배는 자주 호갱노노와 네이버 부동산을 들락거렸다. ‘부동산 스터디’ 카페도 가입하고, 블라인드 부동산 게시판까지 수시로 들어가 동네, 아파트 이름을 검색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매물이 또 올라왔네? 새 실거래가는 얼마로 찍혔지? 그새 올라온 댓글을 볼까⋯

내가 산 단지에 대해서만 그러지도 않았다. 아는 누가 최근에 샀다던 옆 도시 단지. 이전 집 앞 리모델링 단지. 분당에서도 ‘진짜 분당’은 여기라는 ‘서수정’ 단지⋯ 뭐를 알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 틈 날 때마다 온갖 단지의 소식, 호가와 실거래가를 확인했다.

게시판 글은 자리를 뜰 타이밍을 놓친 술자리 속 취한 상태로 억지로 건네받는 소맥잔 같았다. ‘상급지‘와 ‘하급지’를 나누고 임대아파트와 그 주민을 혐오시설로 묘사하는 시선을, 우리 단지와 옆 단지를 비교하며 매기는 점수를, 한 두 문장만에 상대를 무식하고 열등감 가득하다 낙인찍는 모습을 보면 속이 울렁거렸다.

‘이런 사람들 뿐이라니 정말 싫다!’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가만, 대체 누굴 향한 볼멘소리인가? 누구도 나를 이 술자리에 억지로 불러앉혀두지 않았다.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또다시 게시판을 여는 건 온전히 나 자신의 선택이었다. 어라, 나 또한 ‘이런 사람들‘인가.

소위 ‘부동산 문제’를 둘러싼 담론을 보며 늘 냉소를 지었다. 모두가 집값은 잡혀야 한다면서 자기 집만은 오르길 바란다면, 이 모순된 욕망에서 비롯한 문제를 대체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어? 라는. 허나 그 냉소의 대상에서 나는 과연 예외였을까⋯

‘뭐를 알고 싶은지도 모르는’이라 적었지만, 솔직해져보자. 수없는 클릭과 스크롤링을 통해 내가 탐지하고 싶던 건 사실 이런 신호들 아닌가:

내 구매가보다 훌쩍 높게 찍힌 실거래가. 사고 싶었던 단지 근처 개발 소식이 고꾸라졌다는, 그 포도가 알고보니 참으로 시더라는 소식. 우리 아파트 – ‘우리 아파트’! – 에 안 좋은 댓글을 다는 A는 시간 많고 할 짓 없는 흔한 악플러인 반면, 이 쪽을 좋게 이야기하는 B와 C는 점잖고 뭘 좀 아는 사람이라는 증거.

그 모든 걸 종합해 만들어낸, 결국 너는 좋은 선택, 현명한 투자를 했다는 안심.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에서 얻을 수 있는 안심이라는 게대체 내게 어떤 가치를 지닌단 말인가? 이 게임기를 내가 일주일에 몇 번이나 가지고 놀지, 내가 이 바지를 입고 앉고 걸을 때 얼마나 편할지. 마치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얼굴도 본 적 없는 남이 내려줄 수 있는 양 구는 게 내 모습이었다.

2026년 한국의 집 구매기에 돈 얘기를 빼놓긴 불가능해 보였다. 어찌저찌 그런다 한들 본질적으로 중요한 뭔가가 빠진 기분일 듯 했다. 그런 부채감에서 출발해, 어디서 시작할지 모르겠는 막연함을 다독이며, 집과 돈을 둘러싼 마음에 대해 적고 나면 무언가가 손에 잡히길 기대했다.

글을 마친 지금, 나는 어떠한 해소의 감정보다는 맘놓고 돈을 밝히지도, 반대로 아예 돈에 초연하지도 못하는 스스로의 어정쩡함만을 마주한 기분이다. 조개도 낙지도 없이 텅 빈 그물망을 들고 온몸에 진흙만 잔뜩 묻힌 내가 거울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정말 모르겠어 / 또 모든 게 결국 돈 얘기가 돼 (조월, 「당신의 사랑을 빌미로 (feat. 해파)」)

집은 안정감. 집은 갓 빨아서 갠 태양 냄새 나는 수건. 집은 고양이와 아이의 잠자리. 집은 딱 좋을 만큼만 펑퍼짐한 튼튼한 바지. 아니 집은 호재와 악재. 집은 공동현관 문을 여는 신분증. 집은 홍수 속 뗏목. 집은 누구나 이름을 아는 브랜드의 화려한 외투.

나도 정말 모르겠다. 살아갈수록 돈 얘기가 아닌, 아니어야 할 듯한 모든 게 결국 당연스레 돈 얘기가 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