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 Manager로의 직무 전환 이야기
6년의 Product Engineer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Product Manager로 일하게 된 이야기.
들어가며
지난 10월, 직무를 바꿨다. 회사를 옮긴 건 아니고, 플렉스팀에서 하는 일만 달라졌다. 6년간 맡았던 Product Engineer 역할을 내려놓고, Product Manager(이하 PM)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관련해서 반복적으로 답하게 되는 질문들도 있고, 작은 결정은 아니다 보니 한 번 글로 남기면 하면 좋을 것 같았다.
PM은 어떤 일을 하는가
가족 포함, 업계 밖 지인이 가장 먼저 묻는 건 ‘PM이 어떤 역할인지’였다. 재밌게도 막상 명확히 설명하기가 어려웠는데, 늦게나마 정리할 계기가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PM의 역할은 ‘팀이 제품을 통해 시장에서 풀 가치가 있는 고객의 문제를 찾고, 잘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이다. 모호해 보이는 정의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동일한 이름의 직군에 기대하는 역할은 회사나 제품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그걸 감안하되, 제품 중심 IT 스타트업이라면 아래 정도는 어떤 곳이든 비슷하게 적용된다.
- 팀이 풀 가치가 있는 문제를 정의한다. 먼저 고객의 삶 속 어려움, 시장에 존재하지만 충족되지 않은 요구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 문제를 잘 풀었을 때의 사업적 임팩트를 예측한다.
- 풀 가치가 있는 문제 중, 무엇이 지금 가장 중요한지 가려낸다. 판단에는 데이터, 고객의 반응, 시장의 상황, 팀의 상황 등 다양한 근거가 개입된다. 이를 수집하고 올바르게 해석하여 지금 가장 집중할 문제를 판별한다.
- 가장 중요한 문제를 찾았다면, 풀 방법을 찾는다. 개발, 디자인, 비즈니스, 마케팅, 법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해 주어진 제약 아래서 구현 가능한 최선의 해결책을 그려낸다.
- 그 문제가 ‘풀린 모습‘을 정의한다. 우리가 성공한다면 고객의 문제가 어떤 모습으로 해결되는지, 그 해결책은 무슨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지, 어떤 지표와 반응이 근거가 될지 안다.
- 위 내용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팀 전체가 충분히 이해하고 같은 페이지에 있도록 한다. 서로 다른 전문성과 배경을 가진 동료를 같은 목표를 바라보게 만들고, 혼자로는 이루기 어려운 성과를 이뤄낸다.
더 자세하게 설명된 한국어 자료로는 조성문 님의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란?」을 추천!
왜 엔지니어를 그만두었나
나는 엔지니어로서 내 커리어가 만족스럽다. 운과 주변 좋은 분들의 도움 덕이지만, 내가 프로그래밍을 순수하게 정말 재밌어했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좋은 경력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재밌는 도구를 더 빨리 잘 다루게 되어 결국 멋진 걸 만들기 위해’ 했던 많은 일들이 성취와 기회로 이어졌다.
누구나 돈을 내고도 하고 싶을 만큼 순수한 재미를 느끼는 일이 있다. 그 일을 업으로 삼는 건 커리어 측면에선 불공평한 이점(unfair advantage)으로 작용한다. 일터에 흔한 고됨, 지루함이 아닌 즐거움은 더 오래 높은 능률로 일할 연료가 된다. 출퇴근 시간은 물론 주말과 휴가 때에도 관련된 생각을 안 놓고, 세상의 모든 자극은 백그라운드에서 늘 도는 필터를 거쳐 업무에 대한 영감으로 들어온다.
작년쯤부터인가, 그런 이점이 조금씩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개발이 예전처럼 재밌지 않았다. 엔지니어로서 부족한 점들은 눈에 띄는데, 메꾸려 노력하고픈 기분이 안 들었다. 당시 적은 글에 심경이 드러난다.
다양한 줄기로 흐르는 생각 모두가 결국 ‘열정’이라는 본류로 반복해 돌아오는 요즘이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안 보였다던가. 다양한 열정 속에 휩쓸려 정신 없을 땐 열정의 가치, 또 열정 둘 곳의 귀함을 참 몰랐구나 싶다. 대체 뭐 때문이지? 왜 피로한지 말을 줄 세우기조차 피로해서 미루고만 있다.
몇 주 전엔 “여러모로 바닥을 찍는 기분 속에서 허우적대는 요즘이다. 처박히지 말고 튕겨 오르자!” 라고 적었다. 적고 나니 문장이 벌떡 일어나 튕겨 오르도록 손을 끌고 등을 밀어주었다. 큰 피로함을 이기려면 일단 작은 피로함부터 이겨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만 미뤄야 할 때가 코 앞이다.
이미 쌓아놓은 경력과 기술을 갖고 앞으로 개발자로 쭉 일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게 과연 팀에 내가 가장 잘 기여하는 방법일지, 또 내 시간을 가장 존중하는 결정일지 자문했을 때,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만 미뤄야 할 때가 온 듯했다.
왜 PM인가
‘지금 가장 잘하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열정을 태울 수 있는, 그러므로 결국 잘하게 될 일’을 찾기 위해 최근 들어 내가 재밌게 느끼는 주제와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데 자꾸 하는 일이 무엇인지 돌아보았다. 결국 아래 둘로 좁혀졌다.
- 어떤 방식으로든 고객의 중요한 문제를 찾아낸 뒤, 멋지게 해결해낸다. 고객은 행복하고, 사업은 성장하게 만든다.
- 다양한 이의 힘을 모으고 생각의 정렬을 맞춰, 혼자서는 못 푸는 크고 중요한 문제를 함께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각자에게 좋은 커리어, 멋진 추억으로 남을 경험을 만들어낸다.
위에서 이야기한 PM이 하는 일과 거의 완벽히 겹친다. 덕분에 다음 할 일이 무엇인지는 그다지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토스에서부터 생긴 PM/PO 역할에 대한 관심이 언젠가부터 내 안에선 자명해졌던 것 같다.
어떻게 전환했나
직무 전환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결심이 선 시점에 엔지니어링 리드와 PM 리드에게 의사를 표했다. 그렇게 진행해보자는 합의 후, 챕터 리드 및 초기에 합류한 엔지니어로서 나에게 의존성이 걸린 일을 식별하고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되고 팀의 입장에서도 직군 전환이 말이 되는 시점이 왔고, 그게 지난 10월쯤이었다.
전환은 큰 어려움 없이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플렉스팀에서 일하면서 계속 PM 역할에 느슨한 관심을 두고 회사 안팎으로 관련 조언을 구해온 게 도움이 되었다. 팀 내에 이미 다른 직군에서 PM으로 직군을 변경한 사례가 존재했고, ‘PM 관심 있다’, ‘하면 잘할 것 같다’라는 이야기도 서로 간간이 나누어왔다.
팀의 입장에서는 검증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업무 대신 상대적으로 덜 검증된 영역에 대한 도전의 리스크를 함께 감수하고 지원해준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래 사실들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 3년 가까운 재직 기간 동안, 팀에 필요한 업무라면 가리지 않고 맡아서 책임감을 갖고 높은 완성도로 수행하는 모습을 통해 팀 내에서의 신뢰를 쌓았다.
- 최초의 프론트엔드 챕터 리드 역할을 맡아, 팀과 챕터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람과 조직 문제를 해결하고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 평소 제품 개발 과정에서 구현 관점뿐만 아닌 고객과 제품 관점에서도 의견을 내었으며, 관련 리소스를 찾아보고 공유하고 실제로 적용하는 등 관심을 꾸준히 보여왔다.
해보니 어떤가
PM으로 일한 지 이제 두 달이 좀 넘었다. 새로운 게 많고, 자신의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이는데 빨리 다 메꾸고 엄청나게 잘 하고픈 마음이다. 주변에서 신나보인다는 코멘트를 많이 들었는데, 티가 날 정도라니 부끄러우면서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직무 전환의 원래 목적은 잘 달성한 것 같다. 짧은 시간이지만 느낀 점이 크게 둘 정도 있다.
먼저, 제품 출시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첫 번째 단계로 오면서 이 역할에서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정말 적고 동료의 힘이 절실함을 느끼고 있다. 프론트엔드 개발을 할 땐 내 작업이 출시 직전 단계이니, 내 구현이 더 빨라지면 그대로 출시 일정을 당길 수 있었다. PM으로서는 그런 여지를 아직은 잘 못 찾고 있다. 디자인이나 구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필연적으로 생기는데, 더 빠르게 더 큰 임팩트를 내기 위해 PM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더 고민하고 배워야 함을 매일 느낀다.
다음으로, 직무는 바뀌었지만 엔지니어로서 쌓은 경험이 헛되지 않음을 느낀다. 디자이너와, 또 엔지니어와 협업할 때 엔지니어링적 사고가 장착된 덕에 미리 함정을 피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다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너무 엔지니어 입장의 사고만 하게 되는 건 경계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 역할은 그 역할의 전문가인 동료에게 맡기고, 다양한 관점과 층위에서 제품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맺으며
직무 전환은 한 순간처럼 보이지만 돌아보면 몇 년에 걸쳐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과정에서 도움과 영감, 그리고 응원을 주신 모든 분께, 또 믿고 기회를 준 회사에 감사하다. 감사한 마음만큼 좋은 PM이 되어 보답하고자 한다.
커리어의 두 번째 챕터도 잘 부탁드립니다 🙂